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밑줄을 긋고, 생각을 들여다보면서 그 안에 머물기를 좋아한다. 그런 까닭에 많이 읽고, 빨리 읽기를 욕심내지 않는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30분이라고 했을 때 50페이지를 읽는 날도 있지만, 3페이지밖에 읽지 못했을 때도 많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내게는 책을 읽는 행위는 단순히 '읽기'가 아니다. 단어를 하나씩 꼽꼽 씹어 먹으면서, 한 문장씩 징검다리를 건너듯 건너편에서 조심스럽게 건네오는 사람을 살펴보면서 나의 걸음을 들여다보는 행위이다. 그러니까 징검다리를 또 하나의 차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두 세계의 만남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공간은 서로의 호흡을 존중하고, 대화를 좋아하는데, 어떤 날에는 모험을 떠나온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어떤 순간에는 평온한 보금자리를 찾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너의 세계는?"
"나의 세계는..."
누군가 내게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굳건하게 지켜나갈 수 있는 방법을 물어온다면 감히 나는 '읽기와 쓰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세계관을 공유하고, 그것에 관한 글로 표현하는 시간을 추천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갑자기 궁금해지는 것이 무엇인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눈앞에 펼쳐놓으면서 인생의 조각을 맞춰나가보라도 얘기해 준다. 물론 필연적으로 일시 멈춤 버튼을 눌러야 하는 상황이 생겨난다.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는 상황 말이다. 그럴 때는 하는데 어떤 죄책감이나 두려움을 갖지 말고 쉬어도 된다. 그 순간에 필요한 것은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삶은 곧 쉼이요, 그런 순간조차 삶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읽고 쓰기를 지속해오는 시간 동안, 나는 매일 이기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 매일 성공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했지만, 그 순간을 쉼으로 정의 내렸기에 방향을 지켜낼 수 있었다. 예쁜 것이 보이면 걸음을 멈추고,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하면 감탄사에 보내주며, 아쉬운 장면 앞에서는 등을 토닥이는 일에 동참하는 일은 시시해 보이지만 소중한 의미를 만들었다. 마치 "언제든지 이길 수 있고, 언제든지 질 수 있다"라고 말한 박웅현의 말을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 마음이 오늘도 여유가 있든, 없든 가방 속에 책 한 권을 챙기게 하고, 나아가든 멈추든 한 줄이라도 끄적일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간다. 그 덕분에 일 년에 한 뼘씩은 자라지 못했지만, 한 마디라도 자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작가. 내 영혼이 만든 ‘제2의 나’라고 생각한다.
활동적으로 보내는 시간에도 만날 수 있고, 주변이 모두 고요해진 시간에도 만날 수 있다. 혼자만의 만남이라 은밀하고, 농축된 모습일 때가 많다. 바로잡아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잡기 위해, 주저 없이 달려 나가야 할 것이 있다면 달려 나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그 덕분에 조금이라도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best를 버리니 only가 보였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