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꽉 채워진 것은 아니지만

by 윤슬작가

'시간이 나면 뭘 해보고 싶어'라는 말을 예전에는 자주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조금 달라진 모습이다. 물론 여전히 농담처럼 '나도 여행을 가고 싶은데',' 나도 그거 해 보고 싶은데'라는 말을 툭 던지기는 하지만 '시간이 나면'라는 말을 덧붙이지는 않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시간은 '나는' 것이 아니라 '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 같다. 정확하게는 내 일을 가지게 되면서, 내가 할 일의 범위를 정하게 되면서 더욱 분명해졌는데 간절함이 뼛속까지 파고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야!'라는 강한 느낌이 찾아들면 몸을 일으킨다. 어쩌면 그 순간을, 마음을 꽉 채워지기를 기다린 건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꽉 채워지는 순간은 어떤 순간일까. 그런 질문을 마주하면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보통은 그랬던 것 같다. 어딘가를 향해 열심히 걸어갔는데,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띠면서 나아갔는데, 가로막힌 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군말 없이 돌아서야 할 때가 있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자각. 그럴 때 나는 시간을 '내'었다. 그리고 알아줄 것 같은데, 내 맘이 네 맘이라고 여겨 행동했는데 그런 마음이 외면당했다는 생각과 함께 그동안의 디테일한 노력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순간, 언제쯤 내게 행운이라는 게 찾아올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런 날에는 시간을 '내'었다.


시간을 내어 몸을 일으킨 날에는 대부분 단절을 선택한다. 거리두기라고나 할까. 남편 혹은 아이, 친구와 함께인 경우도 있지만, 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무엇을 찾아 읽거나 어디를 가야겠다고 길을 나서는 것도 아니다. 그저 깊숙하게 몸을 숙여 넣는다. 시간이 허용하는 만큼 머무르고,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멍을 때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단한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언제 끝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싸 안을 것과 포기할 것을 들여다보면서 말이다. 그리 길지 않아도, 아주 잠깐이라도 마음이 느슨해지면 충분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을 '내'고 난 이후에는 질 좋은 잠을 자고 일어난 것처럼 마음이 한결 개운해진다.


화요일, 어쩌다 보니 매주 화요일에 비를 만나고 있다. 비가 와서인지, 속에서 자꾸만 시간이 마음을 간질거린다. 재충전이 필요하다는 신호인 것 같기도 하다. 아직 시간을 낼 만큼 뭔가 꽉 채워진 것은 아니지만 따스함과 다정함이 와르르 쏟아지는 장면을 찾아보면 어떻겠냐고 간질간질 마음을 부추긴다. 다음 주까지 해내야 할 것이 있다. 그 즈음에는 몸을 움직여봐야겠다. 신민아처럼 '쉼' 선언은 아니더라도, 잠깐은 걸음을 멈춰봐야겠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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