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이지만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표현이 불편하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한 번씩 목에서 툭툭 걸릴 때가 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내가 포함되는 경우 대부분인데, '내 마음이 네 마음이야'라고 단순화시키는 과정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당사자일 때도 그렇고, 상대방의 입장에 놓였을 때도 비슷하다.
어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출근을 해서 건물에 주차를 하려고 하니, 검은색 차량이 지정석에 주차를 내놓고 번호판도 남겨놓지 않은 상태였다. 연락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마치 그 모습이 내게는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원할 때 출차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듯했다. 차를 가지고 이동할 일이 있지 않은 한, 차를 가져오지 않는 나로서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두 번의 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넣었다가 사우나, 운동 손님들 차량으로 출차를 못했었다. 30분을 기다렸다가 결국 차를 포기하고 택시를 불러 일을 하러 가야 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을 경험하고 나니 웬만해서는 차를 가져오지 않는다. 하지만 어제는 외부 업무로 나가야 하는 날이라 불가피하게 차를 가져왔다. 그런데 지정석이라고 적어놓은 곳에 주차를 하고도 번호판을 붙이지 않은 모습이라니, 이건 아니지 싶었다. 평소에는 차를 가져오지 않아 아예 지정석에 대해 마음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어제는 달랐다.
'아, 이건 아니지 않아? 너무 별로잖아. 양심이 없는 거잖아. 몇 개의 스티커가 있는 상황에 번호판만 없다는 건, 너무 고의적이잖아?'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 미운 마음이라도 해도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급한 대로 우선 그 앞에 차를 세웠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적어도 나갈 때는 연락을 하겠지. 그러면 그때는 얘기해야지. 지정석에 주차를 하시면서 번호판을 달지 않으시는 건 너무 하지 않나요?'
솔직히 다른 곳에 주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곧 출근시간이고, 비어 있다고 해도 모두 지정석이라 주인이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얌체 같아 보이는 사람을 그대로 내보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컸다. 그래서 출차할 때 연락받고 나와서 다시 제대로 주차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사무실에 올라갔지만,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차가 출차할 때 방해가 될 것 같아 못내 계속 신경이 쓰였다.
'에이, 그냥 지하에 넣었다가 이번에도 밀린다 싶으면 택시 타고 나갈까, 아니 그래도 그건 아니지, 매번 이게 뭐야? 몇 달밖에 사용 못 하는 지정석인데, 할 수 있을 때라고 이용해야지. 근데, 저 검은색 차량은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사실 무례하다고 여겨지는 차량 주인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는 알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일을 하는 내내 그 사람보다 옆 차량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걸까, 화살은 다시 검은색 차량에게 날아갔다. 그때였다. 그때 전화가 왔다. 차 좀 빼주세요. 전화를 끊고 내려갔다. 상황은 예상을 빗나갔다. 내 자리에 주차를 한 분이 아니라 옆에 있던 차가 출차를 하려니 내 차가 방해가 된 것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차 역시 지정석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곳의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이었고, 비어있는 지정석을 편하게 이용하다가 불편함을 느낀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또한 검은색 차량 주인을 향한 감정이 반영되었을 수도 있겠다.
'나 하나쯤 하면 되겠지가 문제라니까' vs '오죽 급하면 저기에 주차를 했을까'
마음속에 악마와 천사가 있다는 느낌이 이럴 것이다. 누군가에게 피해 주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나의 성격도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노력에 비추어 상대방 또는 제3자 역시 그런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상황을 어렵게 몰고 간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저런 마음이 복잡하게 오가는 동안 차를 뺐다. 그러고는 어디로 이동하면 좋을지 몰라 고민하고 있는데, 주차 관리를 담당하시는 분이 나오셨다. 어떤 상황인지 눈치를 채셨는지 말을 건네왔다.
'우선 옆에 대고 계시다가 나중에 그분 오시면 그때 나오셔서 바꾸세요. 서로 아시는 분들이니까 그냥 그대로 쓰셔도 되고. 제가 가운데에서 얘기할게요. 좋은 게 좋은 거잖아요. (웃음)'
'좋은 게 좋은 거잖아요...'
저리 쉽고, 간단해 보이는 말이 왜 이렇게 어렵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요즘 부쩍 느끼는데, 익숙하게 쓰고 말했던 것들에 대해 자꾸만 의문이 생겨난다.
그대로 써도 되는 것일까.
아니, 지금이라도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걸까.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