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에 대한 관통하는 듯한 대담한 묘사, 전통적인 인도주의의 이상에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글”
- 1946년 한림원에서 밝힌 노벨문학상 수여 사유 중(네이버 지식백과)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를 좋아하지 않는 독자가 있을까.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고 의미를 밝히는 일에 열정적이었던 헤르만 헤세의 바람을 외면할 수 있는 독자가 있을까. 스스로 그런 열정을 감당하기 어려운 시절을 보낸 그였기에 어쩌면 조금 더 빨리 실마리를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신학교를 뛰쳐나오고, 자살 기도를 하고, 학교에서 퇴학당하는. 그러니까 <수레바퀴 아래서>에 묘사된 모습은 한스 기벤란트가 아니라 헤르만 헤세 자기 자신이었다. 한스의 친구였던 하일러에 대한 동경까지도 말이다.
다행히 헤세는 <낭만의 노래>로 작가로 명성이 알려지고, 9살 연상의 피아니스트와 결혼생활을 통해 안정감을 찾아간다. 그러다가 세계대전이 터지고, 극단적인 애국주의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에 시달리던 중 아버지가 죽고, 아내가 정신분열증을 앓고, 막내아들이 입원하게 되는 등, 감당하기 어려운 일로 겪으면서 결국 그도 정신 치료를 받게 된다. 그리고 1945년 헤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헤르만 헤세. 그의 작품에는 그가 생애 전체에서 생생하게 경험한 메시지로 가득하다. 젊은 날에 겪게 되는 고민이나 방황,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사이의 강렬한 충동, 혼돈과 질서 사이에서 길을 찾고 싶은 욕망, 온전한 존재로 바람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삶을 공부한 흔적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것을 오롯이 책으로 담아냈다.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
스스로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앞을 향해 달려가는 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수레바퀴 아래서>, 일상의 평온함을 벗어나 ‘악’이라고 불리는 과정을 거치면서 내적 성장으로 나아가는 <데미안>, 내적 탐구를 넘어 인생의 의미를 밝혀 ‘나’를 극복하는 모습을 담담한 시선으로 옮겨낸 <싯다르타>를 순서대로 읽어나가다 보면 오랜 시간 삶을 공부한 끝에 발견한 그의 선명한 메시지가 보인다.
“삶은 나를 찾는 여정이다. 현실의 부조리는 피할 수 없겠으나, 그렇다고 나를 삶은 여정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헤세의 작품에는 ‘내’가 보인다. 내 친구도 보이고, 가족도 보이고, 동료도 보인다. 그래서 마치 우리 모두를 위한 편지처럼 다가온다. 나를 위로하고, 내 친구를 위로하고, 가족을 위로하고, 동료에게 하고 싶은 마음이 한 장 한 장의 사진처럼 눈앞에 그려진다. 마음이 살짝 느슨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좋고, 여전히 왕성한 호기심을 잠재울 필요도 없다는 용기도 생겨난다. 진짜 이만한 인생 수업이 없는 것 같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