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년, 글쓰기 20년

by 윤슬작가

내가 블로그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2004년이다. 30년 가까이 살던 울산을 떠나 남편을 따라 대구라는 곳에 오고 서너 달 지났을 무렵이었다.


이른 아침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꼭 해야 하는 것’이라는 게 없었다. 저녁 8시가 되어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잘 지내면 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일이었다. 거의 12, 13시간을 혼자 잘 먹고, 잘 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계속해 오던 일도 대구로 올라오면서 재택근무로 바뀌었고, 업무도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어느 때보다 시간적 여유가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적 여유라는 것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나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지, 나에게는 오히려 버거운 일이었다. 아파트 옆의 작은 동산을 잠시 걷다가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도 거실의 그림자는 제자리걸음이었다. 책을 읽고, 방 청소까지 끝내도 점심을 먹으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만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갑자기 말문이 트인 사람처럼 혼자 떠들어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버티기가 아닌 버티기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 ‘네이버 블로그’였다.


닷컴 열풍이 불어 관련한 쪽으로 취업한 사람이 많았고. 전산팀에서 근무했던 사람이지만 나는 컴퓨터를 좋아하지 않았다. 동생들이 컴퓨터 게임을 해도, 먼 산 불구경했다. 일하는 시간에 컴퓨터가 필요해서 전원을 켰고, 업무가 끝나면 곧바로 컴퓨터를 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블로그를 발견했다. 호기심으로 몇 줄 끄적거렸는데, 그게 블로그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연이라면 우연이고, 운명이라면 운명이었다.


그때는 시집을 한참 좋아할 때라서 시를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메모처럼 남긴 날도 많았다. 에세이 또는 수필집을 읽고 마음에 드는 페이지를 발견하고는 혼자 감상에 젖어 자판을 두드린 날도 많았다. 누군가의 글을 공유해 오기도 하고, 드라마나 영화를 비평가라도 된 것처럼 소감을 적기도 했다. 물론 그때는 대부분 비공개로 글을 썼는데, 나를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나의 즐거움을 위한 일이라며 용기 냈을 텐데, 그때는 어려웠다. 그렇게 한 줄, 한 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길지 않은 글 속에 마음을 옮겨 담았는데, 어느 날 출판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에세이 출간하시지 않으실래요?”


내가 스물몇 살부터 신춘문예나 공모전에 열심히 응모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맨날 떨어져 이제 안 되나보다 포기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질문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 채 대답했다.


“네, 해보고 싶어요”


그렇게 발을 디딘 글쟁이의 삶이 2024년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은 글을 쓰는 것을 넘어 책을 쓰고, 책을 쓰는 것을 넘어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책을 만드는 것을 넘어 함께 책을 만들자고 주위를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 거의 이십 년 가까이 되었고, 그 세월 동안 한 번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다가온다.


언젠가 ‘블로그 20’년 이라는 타이틀도 ‘블로그 30년’이 될 것이다. 아마 그때는 나의 글쓰기도 20년이 아니라 30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이 끼어들지는 잘 모르겠다. 증명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생존의 수단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까닭에 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자유롭게 오갈 생각이라 가능성을 열어둘 뿐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게 있다면 지금의 자리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삶이 투영된 글을 쓰는 일, 글쟁이라는 고유한 컬러는 유지하고 있을 것 같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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