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동력이었던 시절

by 윤슬작가

"열심히 노력하는 데 늘 마음이 불안해요"

"지금 하고 있는 노력이 나중에 정말 쓸모가 있을까요?“


그녀들의 질문은 나의 질문이기도 했다.

그녀들의 질문은 물론 표정, 감정이 낯설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아직 남아있는 것들인가?'라고 자문했던 기억이 난다.


마흔 초반까지 비슷한 질문을 자주 던졌다. 새로운 관계를 밝혀낸 것은 아니지만 그즈음을 조금 경계가 생겨난 것 같다. 쓸데없이 중복되는 의심을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지우개로 지운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고 나도 모르게 불안을 향해 고개가 돌아가는 것을 완벽하게 막지 못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한 것은 단 하나였다.


"한 번 더 움직이자"

"한 걸음만 몸을 옮겨보자“


솔직하게 표현하면 불안해서 더 많이 매달렸던 것 같다. 불안해서 밤잠을 설쳐 정보를 찾고, 하나라도 더 하기 위해 수면시간을 줄였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상황에 맞춰 어느 날에는 아침형 인간이 되었고, 어떤 날에는 올빼미형이 되었다. 나를 응원하고, 믿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고, 진심으로 나를 아껴주고 있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지금의 노력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지 명쾌한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은 불안으로 이어졌고,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러니까 불안은 내게 일어나는 모든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나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불안'은 스트레스의 원인이자, 동력의 발화점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요즘도 잠을 설쳐가면서 책을 읽을 때가 있다.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하나라도 더 하기 위해 가장 먼저 수면 시간을 줄이는 버릇도 여전하다. 하지만 과거와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지금은 '불안'하다는 이유로 어떤 행위를 하거나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아서, 이거라도 해 놓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덤벼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지금의 노력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발휘할 거라는 믿음,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면서 정체성을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나만의 탁월함'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열심히 노력하는 데 늘 마음이 불안해요"

"지금 하고 있는 노력이 나중에 정말 쓸모가 있을까요?“

그 마음을 어찌 모를까. 아무도 없는 터널 속에 혼자 걷는 기분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얘기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열심히 노력하는데, 불안할 수 있어요. 지금의 노력이 나중에 쓸모가 있을까 의구심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인생에는 '그렇게 지나야만 하는 구간'이 있는 것 같아요. 지난한 길, 막막해 보이는 길을 수행자처럼 걷다 보면,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귀인'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그만치의 힘이 필요한 시절이 있고, 그만치의 시간을 거친 후에야 마주하는 풍경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이번 기회에 마음을 조금 다르게 가져보세요. 내 몫이라는 마음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말이에요. 현재진행형이 과거시제가 되는 날이 올 거예요. 세상에 나만 걸어보는 길은 없다고 하잖아요. 앞서 걸어간 수많은 이들이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러니, 우리 그 말을 한번 믿어 봐요”라고.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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