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by 윤슬작가

“좋을 때는 다 괜찮아요. 진짜는 힘들 때 확인되는 것 같아요”


시작은 글쓰기였는데, 어쩌다 보니 그날은 주제가 관계, 인간의 심리로 흘러 들어갔다. 저마다의 고민이 있었던 걸까. 분위기는 급물살을 탔고. 서로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서 여러 이야기가 쏟아졌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좋은 사람이 아니라서 당황했던 이야기, 평소 호감 가는 스타일이 아니라 선입견 같은 게 있었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고백, 만나서 얘기를 나눌 때 너무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게 낫다는 진지한 조언을 비롯해 만남이 길어지는 과정에서 생겨난 많은 에피소드가 꼬리를 이어 나갔고, 결국 아메리카노를 추가 주문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때 나온 이야기가 바로 저 말이다.


제법 오랜 시간을 알았고, 잠깐 같이 일한 경험이 있어, 동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같이 먹고 잠을 자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거의 모든 시간을 공유하게 되었고, 각자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 좋은 결과를 만들 거라는 암묵적인 합의 같은 게 있다고 한다. 너무 기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라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적어도 목적지는 똑같다는 생각에 위기가 찾아와도 큰 문제가 안 될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고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흘러갔으면 나으련만, 복병은 생겨나기 마련이었다.


두 사람 모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고 처음에는 작은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활화산처럼 주변을 온통 불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서로 상처가 깊어진 것은 물론이었다. 거기에 결과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가 필요한 상황이 벌어졌고, 나서서 총대를 매야 했지만, 먼저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그 일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두 사람은 일을 관두게 된 것은 물론. 그 이후로는 소식을 끊고 살아간다고 했다.


언젠가 드라마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 속상해하면서 들려줬던 것 같기도 하다. 정말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 수 있겠어’

사실 ‘일’이라는 것은 규칙적이고, 안전한 상태에 머무르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변화와 성장을 바탕에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안전하고 무질서해 보일 수 있고, 어느 날에는 반복적이고 지루해 보이는 것이 환상적인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일이 술술, 좋은 방향으로 흐를 때는 제대로 알기 어렵다. 아주 약간의 틈만으로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거기에 ‘책임’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면 그야말로 위기 상황이 된다.


위기 상황.

위기 상황이 벌어지면 본능적으로 생존을 떠올린다. 매슬로우의 이론처럼 자아실현의 욕구는 생존, 안전, 소속감, 존중과 존경의 욕구 이후의 단계이다. 다시 말해 생존에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움츠리게 되면서, 멋진 모습을 위해 거추장스럽게 달고 있던 것들을 벗어던질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어느 시인의 글귀처럼 ‘하룻밤 사이에도 겨울은 올 수 있다’라는 일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러 생각을 떠올려보았지만,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받아들이는 것’밖에는 무슨 수가 있을까.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억울한 감정이 일상을 뒤흔드는 느낌이 들더라도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그래도 시간은 믿을만한 약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시간 속에 몸과 마음을 뉘어놓고 질문을 던져보자. ‘왜 나에게 이런 일이?’가 아니라 ‘삶은 내가 무엇을 배우기를 원할까?’라고, ‘내가 뭘 잘못했다고?’가 아니라 ‘이번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라고 말이다. 이것이 상황을 완벽하게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내 마음을 완벽하게 선량하게 만드는 데에는 도움되지 않을까.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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