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도 메타인지가 필요하다

by 윤슬작가

“저는 ‘그’라는 지시어를 많이 사용해요”

“끝에 가서 길게 늘어진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어요”

“저는 저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요. 모든 글이 ‘나’로 시작해요”

“제 글은 항상 앞쪽에 설명이 길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 급하게 마무리하는 느낌이 들어요”

“글을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면, 지루해질 수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내 글에 대한 특징을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스타일이라면 스타일이라고 해당하는 것을 발견한 것은 기쁨일까, 슬픔일까. 모든 사람이 제가기 다른 것처럼 글 쓰는 스타일도 모두 다르다. 누구에게나 마치 오래된 습관 같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쓰는 버릇 같은 게 있다. 다만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있고, 알고 있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아 고민하는 사람이 있고, 여전히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글은 경계가 필요한 작품이다. 글을 쓴 사람과 쓴 사람이 만날 수 있는 경계 말이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이 여기까지이며, 당신이 이곳까지는 왔으면 하는 것이 있다. 어려운 얘기지만 경계는 주관적인 시선을 조금 내려놓고, 객관적인 시선을 조금 확보했을 때 완성된다. 맥락을 살펴 의도에 맞게 전개되고 있으며, 적절한 단어가 활용되고 있는지를 점검하여 버려야 할 것과 챙겨야 할 것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자신이 어떻게 글을 쓰는지, 글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다른 사람의 피드백이나 의견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자신이 쓴 글을 평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실력’이기 때문이다. 그 실력이 갖춰졌을 때, 변화가 시작된다. 문체에 대해 연구해야 하는지, 전개 방식을 고민해야 하는지, 글을 시작하는 형식에 변화를 줘야 하는지와 같은 객관적이면서 구체적인 방향으로의 변화 말이다.


‘메타인지’라는 말이 있다. 글쓰기도 다르지 않다. 글은 단순히 글자의 나열이 아니다. 글을 쓴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가장 잘 전달하고,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독특한 스타일을 자랑하더라도 읽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면 공허한 글이 될 뿐이다. 내 글의 경계가 명확한지 불분명한지 알아차릴 방법은 애석하게도 하나밖에 없다. 스스로 글을 평가하고 보완할 부분과 버려야 할 부분을 구분하는 실력을 키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시간을 정해놓고 글쓰기를 하든, 분량을 정해놓고 노력하든, 강제성을 동원하든 매일 글쓰기에 관여할 수밖에 없다. 신영복 선생님은 <처음처럼>에서 소개했던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궁극에 이르면 변화하고, 변화하면 열리게 되며, 열려있으면 오래간다는 뜻입니다”를 수시로 되뇌면서 말이다.


글쓰기 실력을 키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내 글에 대한 메타인지를 가지고 싶다면 변화가 시작되는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먼저이다. 수준보다는 분량에 욕심을 내면 좋을 것 같다. ‘이게 도움이 될까’, ‘잘 될까?’라는 생각보다는 ‘매일 꾸준히 노력하는 게 도움이 될 거야’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이 생겨나고, ‘아,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었구나’라는 깨달음과 함께 ‘나도 이렇게 써보고 싶어’라는 갈증이 생겨난다. 뭐랄까, 변화의 도화점이 될 만한 일들이 시절인연처럼 찾아온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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