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일을 반복하기보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거나 배움이 있겠다고 여겨지면 일단 시도해 보는 편이다. 결과를 떠나 과정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혼자 뿌듯해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늘 반짝거리는 성과를 남기지는 못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에 빠진 사람처럼, ‘정말, 정말 다시는 안 할 거야!’라는 말을 허공을 향해 수십 번, 수백 번 외친 적도 많다. 그리고 실제로는 한동안 그 일과 비슷한 것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의 기본적인 성격은 ‘시도해 보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약인지, 조금 더 흐르고 나면 뭔가를 종이에 끄적이고 있었다. 아이디어를 구상하기도 하고, 머릿속으로만 맴도는 것을 남편 또는 친한 친구에게 드러내었다. 그러면서 혼자만의 고민에 빠지기도 하고, 결과가 상처로 남는 일이 되지는 않을까 염려 가득한 얼굴이 되기도 했다. 차라리 뭘 벌리지 말고, 지금 하는 것만 열심히 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복잡한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솔직히 실패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나도 다르지 않다. 대충해서 중간을 유지하는 게 낫지, 굳이 드러내고 시도해서 실패를 알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안전한 것, 결과가 보장된 것만 해내는 것도 잘하는 일이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시도하는 사람’이기를 자처하는 걸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과거 실패로 끝난 경험들이 지금은 실패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농담처럼 자산 목록이 쌓였다고 얘기하지만, 나를 스친 모든 순간은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 되었다. 나를 설명하는 정체성의 그림자이며, 자율성의 배경 화면이 되었다. 거기에 수많은 실패를 만난 덕분에, 실패를 마주하는 나름의 방법도 지니게 되었다. ‘그럴 수 있지!’, ‘잘 되면 좋겠지만, 안 될 수도 있지!’와 같은 나만의 주문 같은 게 있다.
2023년을 잘 보내고, 2024년을 잘 맞이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두 가지 일을 기획해서 진행 중이다. 담다 페스티벌, 텀블벅 펀딩. 담다 페스티벌을 준비하기 위해 대구 출판산업 지원센터를 찾아갔을 때였다. 담당자가 내게 물었다.
“참가 인원은 몇 명쯤 되세요?”
잠시 고민된 것도 사실이다. 처음 해보는 일인 데다가, 반응이 어떨지 나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머뭇거리기 싫었다.
“50명? 100명?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고요!”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웬만한 행사가 아니면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어, 진짜 10명도 안 모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이 무거웠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해보자고 했잖아. 열심히 알려보자!’
텀블벅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습관을 만들 수 있는 <2024 셀프 리더십 달력>을 추진한다고 했더니, 걱정스러운 모습이 많았다. 요즘은 신기한 게 많아서, 굉장한 아이디어가 아니면 펀딩 성공이 쉽지 않을 거라며, 홍보 열심히 해야 할 거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여기저기 소식을 전했다. 아니다. ‘펀딩 소식을 시작했으니 한번 구경 오세요’라고 홍보활동을 했다. 예전이라면 부끄러워서 못 할 일, 미안해서 못 할 일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 보았다.
물론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완벽하게 정신 무장을 마친 상태에서 ’잘 될 수밖에 없어‘라고 자신감 넘치게 외칠 사람도 못 된다. 하지만 이것 한 가지는 분명하다. 담다 페스티벌을 정리하면서 ’역시 시도해 보길 잘했어‘라고 얘기할 거고, 텀블벅 펀딩을 끝마친 날, ’역시 모든 시간은 다 괜찮은 시간이었어‘라고 얘기할 거라는 것을 나는 너무 알고 있다. 그래서 노력을 시도해본다. 이 순간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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