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치르는 시각

by 윤슬작가

첫째가 수능 시험을 치르는 시각,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이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들고, 모성이 어떤 형태로 발현되고 있을까?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요즘이다.

_윤슬 <Best를 버리니 Only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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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아리송하게 마무리했던 날을 드디어 마주했다. 2023년 11월 16일. 첫째가 수능 시험을 치르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할 때가 되었다.


오늘은 학교에 가지 않는 둘째를 남겨두고, 조금 일찍 사무실에 출근했다. 편집이 완료된 책의 인쇄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1월에 출간 예정인 교정 원고를 확인하기 위해, 기획안을 점검하기 위해 평소보다 30분 정도 일찍 나왔다. 그러고는 그날그날 해야 할 일을 문제없이 잘 해내는 사람처럼 일상성을 지켜나가고 있다.


수능을 치러 가는 첫째에게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과 애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의 생각은 달랐다. 아이는 ‘아주 특별한 날’이 아니라 ‘그저 그랬던 날’들 중이 하나이기를 원했다. ‘그래도 수능인데’라며 어떤 도시락을 해주면 좋을지 물어봤지만 한 치의 고민도 없었다. 모의고사를 치를 때마다 먹었던 샌드위치면 충분하다고 했다. 다만 이번에는 도시락 가방에 넣어달라고 말한 게 전부였다. 시험을 잘 치고 오라는 얘기도, 파이팅도, 사랑의 눈인사도 없었다. 현관문을 나서면서 우리가 나눈 말은 이게 전부였다.


“갔다 올게.”

“잘 다녀와”


며칠 전, 남편과 그런 이야기를 했다. 고3만 고3이 아닌 것 같다고. 고3의 엄마도, 아빠도, 심지어 할머니, 할아버지도 모두 고3이라고. ‘수능’은 그 자체가 신성한 고유명사가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떠들어다가도 고3이라는 소리에 모든 상황이 종료된다. 모든 것이 이해되고, 모든 것이 용서되고, 모든 것이 허용된다. 마치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 같은, 마지막 남은 퍼즐의 한 조각 같다. 그래서 드러내놓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 마음은 다르지 않다. 염려하고 있으며, 걱정하고 있으며, 모두 승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깃들어 있다. 나도 다르지 않다. 어려운 문제 앞에서 마음이 급해지지 않을까, 아는 문제라고 성급하게 풀다가 실수하지 않을까, 듣기평가를 할 때 놓치는 것은 없을까 여러 생각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래서 책을 펼쳤다. 글을 썼다. 여느 때와 똑같이. 정리되지 않은 것을 정리하기 위해, 정리된 것을 혼자 소리 내어 읽기 위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눈빛과 걸음걸이를 되찾아 오기 위해. 그러니까 나만의 방식으로 수능과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수능을 환대하고 있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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