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늘 괜찮다고 했다

by 윤슬작가

친정엄마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말을 자주 하고 있다. 엄마 아빠는 필요한 게 없다고. 우리 걱정하지 말라고. 혼잣말처럼 아주 가끔은 먼발치에 서 있는 사람도 모두 들릴 정도로 얘기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 2시간이면 흔한 말로 ‘떡을 치는 거리’에 있음에도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예전이라면 벌써 짐작하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주고받기에 바쁠 일인데도 요즘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아는 일이 많아졌다.


작년까지 시댁과 친정이 김장하는 날이 항상 똑같았다. 두 분이 의논한 것도 아닌데 희한하게 입을 맞춘 것처럼 같은 날 배추를 절이고, 양념했다. 그러다 보니 결혼하고는 엄마가 김장할 때 한 번도 도와주지 못했다. 시댁에서 김장할 때, 형님이 오셔서 어머님을 돕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늘 마음 한편이 애잔했다. 뭔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사람 같은 기분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올해 처음으로 김장 날짜가 달랐다. 엄마가 김장 날짜를 평소보다 일주일 정도 당긴 것이다. 이번에는, 고3인 첫째의 수능시험도 끝난 후라서 일을 마치고 토요일 늦게라도 가서 손을 보탤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 성격에 토요일 아침부터 서둘렀을 확률이 높아 보였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뒷정리할 것은 항상 넘쳐났다. 그때부터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무엇보다 고속도로를 운전하는 것에 대해 염려하는 엄마 성격을 잘 아는 까닭에 미리 이야기하지 않고, 늦은 오후 울산으로 출발했다. 5분만 더 가면 곧 도착할 것 같았다.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띠리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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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영아.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엄마, 나 울산 다 왔어!”

“뭐?”

“나 울산 도착했어!”

“엄마 괜찮다니까”

“이번에는 시간이 되길래 내려왔지...”

“엄마 괜찮다고 했잖아. 우리 딸, 못 말린대이...”


‘못 말린대이’라는 말이 왜 그렇게 정겹게 들렸는지 모른다. 현관문을 들어서는데, 네가 왜 거기에 서 있냐고 의아하게 바라보면서도 얼굴에 미소가 한가득한 엄마. 마당에 한가득 숨이 죽어있는 배추의 꼭다리를 따러가는 참이었는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매어 완전무장 한 상태였다.


“엄마 괜찮다고 했잖아...”

“알지, 엄마 괜찮은 거. 근데 나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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