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새해가 시작되면 할만한 일을 나는 11월부터 시작한다. 무엇보다 성격적인 요소가 가장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태생적으로 다혈질이라서(예전에는 인정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상황이 예상을 빗나가거나 긴급해지면 말이 빨라지고, 발걸음이 분주해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최대한 그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약간의 틈만 보이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조금 일찍 시작하자’였다.
혼자만의 준비과정을 거친 후, 생각나는 대로 시작하자는 방식이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신비로운 결과를 마주하여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조금 일찍 시작했기에 불필요한 걱정이나 불안 요소를 몇 가지 줄일 수 있었고, 원하지 않은 전개에 압도당하는 게 아니라 해결방법에 집중하는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니까 혼자 저만치 달려가거나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경주마처럼 말을 쏟아내는 일이 사라진 것이다.
11월이 되면 나는 ‘가족들과 함께 보낼 계획’을 세운다. 일년동안 잘 지내온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약간의 감동을 주고받는 시간을 준비한다. 예쁜 모습을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어쩌면 12월이 되었든, 1월이 되었든 함께 보낼 시간을 약속하고 준비하는 것은 나를 향한 선언인지도 모르겠다.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잊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선언 말이다.
두 번째 꼭 그만큼의 크기로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나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왔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고, 어딘가 낯선 곳으로 명상 여행을 떠난 기분이 들 때도 있는데, 하여간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책을 읽든, 걷거나 운동을 하든, 글을 쓰든 일기장을 펼치든, 다이어리를 뒤적이든 내 안의 감정이나 생각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진다. 지나온 내 시간 속에 예술적인 요소가 깃들었는지 살펴보면서 말이다. 판단이나 평가보다는 성찰이나 가능성으로 무게중심을 옮겨놓고 휴식이라면 휴식을, 열정이라면 열정을 부추긴다.소통의 시간이자 화해의 시간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말이다.
마지막은 남아 있는 기간 동안 잘 마무리할 것이 무엇인지, 새해에는 어떤 방향으로 일을 이어나갈 것인지 점검한다. 완벽한 마무리가 어렵다면 어디까지 진척시킬 것인지, 70 퍼센트에서 만족해야 한다면 70 퍼센트에 도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길을 트고, 방법을 찾는다. 그 연장선에서 새해 계획도 함께 이뤄지는데, 이때는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접근한다. 계획이 일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일이 새로운 계획을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최대한 열릴 결말을 허락하는데, 너무 많은 규칙, 너무 꼼꼼한 규칙이 오히려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후부터 더욱 그런 것 같다.
요즘도 비슷한 리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드넓은 초원을 뛰어다닌다기보다 추수가 끝난 벌판을 멀리서 지켜보는 마음으로 내 안에 붙어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다듬는 방식이 되었든, 깍아 내는 과정이 되었든 이 모든 행위가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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