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만들어주는 나의 내일을 위하여

by 윤슬작가

삶에서 불확실성을 제거할 방법이 있을까? 거의 다 왔다고 여겨지는 순간, ‘이게 아닌가?’라는 좌절과 허무를 맛보다가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다고 여겨질 때 뜻밖의 도움으로 힘을 얻는 게 삶이다. 내면에 무언가 단단한 뿌리를 박아놓았다고 해도, 뿌리가 흔들리는 것을 막을 길은 없다. 그래서 삶은 훈련이 필요하다. 주어진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는 의식적인 훈련 말이다.


두 권의 책을 동시에 읽고 있다. <쇼펜하우어 아포리즘>과 <퓨처셀프>.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은 목요 인문학 지정도서라서 두 번째로 읽는 중이고, <퓨처셀프>는 여러 곳에서 소개받아 일정 분량을 정해놓고 페이지를 넘기는 중이다. 어떻게 보면 완전히 다른 감각을 건드리는 책인데, 두 권 모두 굉장히 철학적으로 다가온다. 어떤 경쟁도 하지 않으면서 내 삶과 협력할 방법을 찾게 만든다. 그대로 나아가거나 혹은 조금 다르게 바라보거나.


아침에 책을 덮는데, 하나의 문장이 머릿속에서 정리되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보다 내일을 기억하라는 말이 훨씬 더 따듯하겠다!”


어떤 페이지에서, 어떤 책에서 꽃을 피웠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능동적으로 완성한 문장이다. 메멘토모리, 중세시대 수도사들의 인사말을 나는 기억하고 있고, 나에게 그 말을 수시로 들려주었다.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 끝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음으로써 공격적인 마음을 잠재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숨과 마지막 호흡을 떠올리면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생기면서 한결 부드럽고 친절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라는 말을 자주 활용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죽음이라는 것은 근원적으로 부정적인 느낌과 불안을 안고 있는 단어였다. 구불구불한 길 위에서 자칫 방심하면 공허함이나 허무함으로 내달릴 확률이 충분했다. 그래서 의지를 지닌 채, 희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힘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반면 내일을 기억하면서 살아가자는 메시지는 훨씬 긍정적이었다. 지금, 이 순간, 자기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서부터 적극적으로 남아있는 삶에 뛰어들고 싶다는 열정에 불을 지펴주었다. 그러니까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보다 내일을 기억하라는 말이 심장을 더욱 뛰게 만드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비록 쇼펜하우어는 “그대의 오늘은 최악이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쁠지도 모르다”라는 말을 남겼지만, 그렇다고 그 역시 우리가 비관적인 삶을 살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본질적으로 삶은 고통스럽고 불행한 모습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줄 뿐이다. 거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라서 오늘의 노력이 완벽한 내일을 보장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노여워하지 말라는 의미일 뿐이지, 내일을 기대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딱 한 걸음 더 내디뎌볼 생각이다. 내일을 기억하는 것에서 그칠 게 아니라, “당신이 무언가 하겠다고 결심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그 일이 이루어지게 만든다”라는 에머슨의 조언에 기대어 우주가 나의 멋진 내일을 위해 지구를 움직이고 있다고 굳게 믿어 볼 생각이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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