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읽은 책이 모두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면, 내 안에서 온전히 경험으로 쌓여 자산목록을 추가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과거에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 책을 읽기도 했다. 예를 들어 책과 내 머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실 같은 게 있어서 실을 따라 머릿속으로 줄줄이 사탕처럼 들어온다거나. 아니면 내 머리가 스펀지가 되어 활자를 그대로 빨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으로 책에 일부러 코를 박고 읽기도 했다. 곁에서 지켜보았다면 아주 낯설어 보이는, 이상하게 여겨질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하고 마무리하곤 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성과는 없었다. 용량의 한계가 있는지, 입력에 한계가 있었다. 잘 읽었다고,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증명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그때마다 신경이 곤두서고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었다. 갑자기 몸 안의 회로에 탈이 났는지 몸이 경직되는 게 느껴졌고,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한 즐거움이 완전히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읽는 행위와 별개로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이 바깥세상에서 일어난 일보다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상황이 역전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나는 왜 책을 읽고 있는 걸까?’
‘왜 책 모서리에 매달린 기분이 들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기보다는 무언가 실마리라도 찾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루라도 빨리 답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조각조각 떨어진 힌트만 띄엄띄엄 발견하는 기분이었다. 책이라는 것, 독서라는 행위가 굉장히 매력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주의력을 집중하는 데에서 그친다면 굉장히 수동적인 결과로 보였고, 그보다 능동적이며, 그 자체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물론 아직 영웅적인 답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노력이 완전히 물거품이 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적어도 어떤 방향을 추구하고 있는지는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를 최대한 단순하게 표현하면 ‘삶의 의미를 밝히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책 모서리가 아니라 생의 끄트머리에 매달린 기분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아득하고 막막한 기분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내가 책을 읽는 이유이자 목적이었다. 다시 말해 머릿속에 무언가를 잔뜩 소유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내 삶을 온전히 소유할 수 있을까가 궁금한 사람이 나였다. 그래서일까. 가끔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마음이 조급해지거나 마음을 재촉하기 바빴을 텐데, 요즘은 그러지 않는다. 왜냐하면,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한 목적성을 명확히 하고, 삶의 의미를 밝히고 싶다는 의지가 목소리를 높였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에세이 #책읽기 #글쓰기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