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받으면서 살아간다는 생각

by 윤슬작가

며칠째 강추위가 계속되고 있다, 옷을 몇 개나 껴입고, 목도리를 동여매고 길을 나선 아침이다. 더 이상의 추위는 사양하겠다는 단호한 표정으로 묵묵히 앞만 보고 걸었다. 그런데 사무실 입구에 거의 다 왔을 때였다. 독수리처럼 보이는, 제법 큰 검은색 비둘기 한 마리가 빠른 속도로 내 곁 지나쳤다. 두려움을 느끼게 할 크기였는데, 양쪽 날개를 펼친 모습이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도대체 몇 개를 입을 것인지 알 수 없는 나의 모습과 너무 대조적이었다.


그리고는 몇 걸음 걸어가고 있을까. 숨 고르기가 끝났는지 곁에 다가갔을 때였다. 양쪽 날개를 펼치더니 가볍게 그 자리를 떠나갔다. 아무 미련없는 사람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모든 것은 아주 잠깐동안 일어났는데, 그 짧은 순간이 굉장히 크게 느껴졌다.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밀란 쿤데라의 책이 떠오르면서 어느 낯선 여행지에서 분위기에 압도당한 기분이었다.


길을 잃은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목적을 달성했는지, 그러지 못했는지 알 수 없지만 보기엔 목적을 달성한 모습이었다. 떠나온 길을 돌아가는 것인지, 길을 나서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자기만의 방식이 있어 보였다. 정답을 가진 것은 아니겠지만, 이 순간이 나의 것이라는 확신으로 가득해 보였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무엇이든, 누가 되었든 자기만의 방식이 있고,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게 있을 거라고. 하나하나의 순간이 저마다 ‘화양연화’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지나온 시절 동안 내가 선택한 것이 기억났고, 환대하며 마중 나갈 수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순간이 떠올랐다. 왜 그렇게 용기가 없었는지 모르겠다. 조그만 일에도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던, 어떤 날에는 불같이 화를 내었던 그런 자잘한 순간을 내 인생에 대한 헌신이라고 여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게 다가왔다. 그 때문이었을 것 같다.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비둘기가 나를 돕기 위해 이곳에 들렀다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더이상 생의 무게에 짓눌리지 말고, 자기만의 날개를 펼쳐 자유롭게 날아보라고, 그 얘기를 해주려고 일부러 찾아온 손님이 아닐까라는.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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