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대출 그만 받고, 땅 파는 게 맞아"

by 윤슬작가

어릴 때부터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자주 했었다. 딸이 고등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보드게임을 하는 날이 거의 사라졌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보드게임 모두 신발장 한쪽 구석으로 밀려났다. 어릴 때는 밥 먹듯이 했고, 아이들이 작심하고 덤벼든 날에는 하루 종일 보드게임을 하기도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이들도 좋아했지만, 나도, 남편도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거실이나 혹은 아이들 방에서 머리를 마주한 채 그 상황을 신나게 즐겼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보드게임이 밀려났지만, 자리를 지켜내어 거실에 있는 것이 부루마블 게임이다. 지난 토요일, 오랜만에 모두 모여 부루마블 게임을 했다.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던 터라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게임 대장 아들에게 어쩔 수 없는 휴식 시간이 생겨났고, 그 시간을 잘 보내고 싶었는지 부루마블 게임을 제안한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실로 모여들었고, 돈을 나누면서 하나씩 룰을 정했다. 지난번 남편은 은행 대출을 무리하게 받아 파산선고를 받았고, 땅이 없어서 결국 통행료 대신 땅을 팔았기에 대출 기준을 정하자고 했다. 은행에서는 100만 원만 빌려오기로 하고, 땅을 팔 때 번호 뽑기로 가져가기로 했다.


게임이 시작되었고, 각자의 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개의 주위를 굴려 한 칸, 때로는 여섯 칸, 가끔은 열한 칸을 전진했다. 행운의 열쇠를 뽑은 아들이 기분좋게 카드를 집어들었다. 하지만 연금을 내라는 소리에 "내가 무슨 연금?"이라며 말이 안 된다고 했고, 똑같은 주사위를 던진 남편을 갈 길도 먼데 무인도에 걸려 땅을 살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해야 했다. 조금 빨리 앞서가는가 싶던 딸이 유럽과 북미쪽 땅을 사기 시작했는데, 거북이걸음으로 나아가던 나는 하나 건너 하나씩 유럽과 북미에 통행료를 지불해야 했다. 그랬더니 몇 바퀴 돌지도 않았는데, 돈은 바닥났다. 쥐고 있는 카드라고는 동남아시아 땅 4개밖에 없었다. 슬슬 걱정되기 시했다. 협상이 필요해 보였다.


"엄마, 은행에서 돈 빌려와도 될까?“

나의 상황을 모두 예견했고, 게임 진행을 위해 100만 원 대출을 허락했다. 가져오자마자 외상으로 달아놓은 20만원을 갚았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한 번도 안 걸리던 남편의 땅이 걸린 것이다. 남편도 땅을 몇개 안 가졌는데, 유일하게 비싼 땅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곳에 걸린 것이다. 통행료는 100만 원으로도 부족했고, 어쩔수 없이 다시 은행 대출을 꺼냈다. 그러자 딸이 얘기했다.


"엄마, 알지? 지난번에 그렇게 대출 자꾸 받다가 뒤에 난리가 났잖아?"

아들도 곁에서 거들었다.

"엄마 대출 그만 받고, 땅 파는 게 맞아"

우긴다고 될 일도 아니고, 경제관념에 혼선을 줄 수는 없었다.

"에이... 대출 포기하고, 있는 거 팔아야겠어. 여보, 땅 골라봐!“


땅을 내놓는다는 소리에 남편은 좋아했고, 두 아이 모두 아빠가 어떤 땅을 뽑을지 궁금해했다. 통행료 20만 원짜리 2개, 30만 원짜리 1개, 70만 원짜리 1개가 있는데 아빠가 어떤 카드를 뽑을지 호기심가득한 눈이었다. 그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통행료 20만 원짜리 카드를 약간 내려놓았다. 그리고 맨 앞에 두었다. 손의 감각을 믿으며 첫 번째 카드와 세 번째 카드를 방황하는 남편을 향해 ‘이때다’싶어 첫 번째 카드를 밀어올렸다.


"첫번째 카드? 오케이!"

"어?"


얼떨결에 받은 남편은 두 눈을 뜨고 카드를 확인하고는 소리를 질렀고, 두 아이는 곁에서 그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사기를 친 것은 아니지만, 사기처럼 보이는 엄마의 모습도, 그런 엄마의 모습을 알면서도 당한 아빠의 행동도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족은 삶의 기초이자, 보물이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작은 순간에서 정서적 안정감과 행복이라는 감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족은 단순히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감정을 공유하고, 나아가 서로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놓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아주 큰 행사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이번처럼 함께 보드게임을 하면서 깊이를 더해가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또 하나의 따듯함을 선물받았다. 이런 순간을 마주하면, 아주 조금이지만 뭔가 제대로 살고 있다는 기분이 생겨난다. 공통된 토양 위에서 서로에 대한 연대감을 이어 나가고, 그 일에 작은 기여를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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