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않은 빈 시간, 혹은 불쑥 찾아온 일정 변경 속에서 나는 종종 카페로 향한다. 내 가방 속에는 늘 노트북, 다이어리, 필기구, 충전기까지 빠짐없이 들어 있어, 그곳이 어디든 펼치는 순간 내 사무실이 된다. 그래서인지 공간과 시간의 제약 없이 업무에 몰입하는 것이 익숙하다. 카페의 백색 소음이 오히려 나를 집중하게 만들고, 나는 작은 테이블 위에서 효율과 생산성을 극대화한다.
그런데 며칠 전, 그날만큼은 달랐다. 늘 그렇듯 깊은 집중 속에서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잠시 숨을 고르며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을 가져왔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려던 그 순간, 옆 테이블의 대화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엄마는 다 알고 있어.”
“엄마 말이 100퍼센트 맞아.”
“엄마 성격 알잖아.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지금껏 안 하고 있을 뿐이지.”
처음엔 무심코 흘려들었지만, ‘100퍼센트’라는 단어와 ‘다 안다’라는 표현이 목구멍에 가시라도 걸린 것처럼 넘어가지 않고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절대적 확신이 주는 불편함을 경계하는 편이다. 세상에 100퍼센트 확실한 것이 있을까 라는 질문을 품고 살아가기에, 단언적인 말투는 늘 거부감이 먼저 생긴다. 그러다가 문득 아주 잠깐이지만, 이렇게 내가 불편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정말 저 말투 속에 숨겨진 권위적인 태도 때문일까.
그러면서 앞에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 궁금해졌다. 어떤 반응을 하고 있을까? 묵묵히 듣고 있는 걸까, 아니면 수긍하고 있을까? 적어도 20살은 넘어 보이는데,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까, 자꾸 상상력이 발동되었다. 보통이라면 남의 대화에 신경 쓰지 않는데, 이날만큼은 유난히 호기심이 일었다. 집중이 흐트러지고, 머릿속에서 상상력은 제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냈다. 오늘은 끝났어, 라는 생각과 함께 노트북을 덮고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이었다.
‘저 말투, 저 단정적인 어조… 낯설지 않은데, 맞아. 나도 저랬는데…’
그 대화 속에서 오랜전의 나, 스스로 약점이라고 생각하고 고치려고 애쓴 지난 날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나 역시 대학생이 된 딸과 고등학생 아들에게 무언가를 조언하고 싶을 때가 많다. 부모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끝도 없이 떠오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전달하고 싶은 것이 아이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강요가 되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강한 확신이 때론 압박이 된다는 걸 알기에, 입을 다물어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어느 때보다 애쓰는 요즘이다.
살아갈수록 ‘안다’는 말이 얼마나 어설픈 확신인지 수시로 깨닫는다. 부모는 자식에게, 선배는 후배에게, 경험자는 미경험자에게 정답을 가르쳐주고 싶어 하지만, 정답이란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오히려 확신이 지나치면 어떤 가능성을 닫아버릴 수도 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더 이상 옆 테이블의 대화는 들리지 않았다. 내 관심이 그들에게서 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순간, 외부의 소리는 어떤 목소리를 가지지 못했다. 몰입이 깨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또한 배움의 시간이고, 성찰의 시간이 되었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깨달음이란 게 꼭 어디를 가야 한다거나, 학교나 강연을 통해 배운다거나, 큰 아픔을 통해서만 얻는 건 아닌 것 같다. 카페 한구석에서 흘러나온 남의 대화에서도 불쑥 생겨날 수 있는 것 같다. 조용히 카페를 나서며 혼잣말로 되뇌었던 기억이 난다.
‘안다고 말하는 것 말고, 더 좋은 말은 없을까?’
윤슬작가
#윤슬작가 #윤슬에세이 #글쓰기 #경험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