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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어 보이기 위해 품었던 책들

by 윤슬작가

무언가를 아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 보더라도 ‘우와’ 할 만한 책을 품에 안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럴 때 자주 선택했던 것이 바로 고전이었다. 제목이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왜 그리 두꺼운 책에 욕심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일단 좀 무겁고 두꺼운 책을 골라 들고 다녔다.


그러나 결혼한 후, 하루하루를 전투적으로 살아내는 과정에서 고전이 주는 묵직함은 나를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비유와 은유로 가득한 문장들은 ‘내게 너무 먼 당신’처럼 다가왔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현실적인 문제들로 가득 차 있었고, 고전은 해결책을 주기보다는 머리 위로 물음표를 잔뜩 쏟아붓는 기분을 들게 했다.


마흔을 넘기면서 본격적으로 고전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밑줄을 그으며 천천히 한 문장씩 읽어 나갔다. 내게 밑줄은 단순히 주제나 메시지를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과의 접점을 찾는 과정이었다. 한 문장, 한 문단이 내 삶의 물음표와 연결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돌이켜 보면, 고전은 언제나 그 순간, 딱 그만큼의 역할을 해왔던 것 같다. 고명환의 《고전이 답했다》는 그런 과정에서 읽게 된 책이다.



“고전은 모양이 없다. 나는 모양이 있다. 내가 고전을 읽으면 고전이 내 모양으로 바뀐다. 그 고전은 세상과 싸울 어떤 무기보다 단단한 갑옷이 된다.” – 본문 중에서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약점을 노출한다. 방향을 잃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한다. 막막한 감정에 휩싸여 우울감에 짓눌릴 때도 있다. 그럴 때 고전은 자신만의 갑옷이 되어준다는 저자의 생각에 깊이 공감한다. 앞을 헤쳐나가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물렁물렁했던 마음이 조금 단단해지는 기분. 고전을 읽으면서 자주, 그리고 수시로 느꼈던 감정이기도 하다.



“인생의 해답은 역시 고통 속에 있다. 모든 문제는 고통을 피하려 들기 때문에 생긴다.” – 본문 중에서


고전의 힘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을 찾도록 도와준다는 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가는 이유를 스스로 발견하게 해주고, 그림자는 결코 본체의 삶을 앞설 수 없다는 깨달음을 준다. 그러면서 우리는 알게 된다. 고통은 피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마주하고 받아들일 때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회피하고 두려워했던 것들 속에 진짜 나만의 답이 있다는 것을.


책을 읽는 동안,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 그리고 ‘나’라는 세계가 조금씩 확장되는 느낌을 자주 경험한다. 그리고 좋은 문장을 욕심내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삶을 욕심내고 있음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저자는 고전 읽기를 추천했지만, 굳이 고전이 아니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삶을 단단하게 만들고,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책은 얼마든지 많다. 중요한 것은 ‘읽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음이 가는 책을 붙잡는 것.


from 윤슬 작가


#고전이답했다 #책리뷰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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