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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은 국어 1등급을 받을까

by 윤슬작가

며칠 전, 둘째가 뜬금없이 물어왔다.

“엄마, 시를 몇 편 정도 쓰면 책을 낼 수 있어?”

질문은 느닷없었지만, 그 말끝에 실려 있는 설렘은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요즘 시를 쓰고 있다더니, 그 기분이 꽤 좋은 모양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음… 백 편쯤?”

“응, 백 편. 알겠어.”


말투에서 어딘가 목표를 정한 사람의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며칠 뒤 주말 저녁이었다. 식탁에 앉아 과일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둘째가 시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때마침 오랜만에 집에 온 첫째가 분위기를 잡았다.


“시 낭독 한번 해보지 그래?”

둘째는 잔뜩 쑥스러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번 건 진짜 괜찮아. 한번 들어봐.”


부끄러워하면서도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낭독을 시작했다. 솔직히 고백하면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라웠다. 문장은 서툴렀지만 섬세한 마음이 느껴졌고, 감정에는 조심스러운 시선이 담겨있었다. 문장 사이사이에 나름의 리듬감을 유지한 모습이 제법이었다. 남편과 나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누나도 마찬가지였다. 예상 외의 감동에 셋 다 눈을 크게 뜨고 감탄사를 흘렸다.


“이거, 진짜 좋은데?”

“그치? 이번 건 꽤 괜찮지?”

둘째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누나의 칭찬도 빠지지 않았다.


“동생,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다.엄지 척!”

하지만 곧이어 누나의 장난기 얼굴의 짓궂은 질문이 날아왔다.


“근데, 국어 점수는 왜 그래?”

역시, 누나가 아니라 누님이었다.

현실 감각은 놓치지 않으니 말이다.

“이번 모의고사 봤잖아. 성적표 나왔잖아. 어떻게 됐어?”


분위기가 살짝 얼어붙었다.

누나의 눈은 반쯤 장난, 반쯤 진심이었고,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나머지 세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속삭였다.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지’

하지만 고민도 잠시, 누나가 능숙한 솜씨로 상황을 종료시켰다.

“윤동주 시인은 국어 1등급 받았을까?”

“시 쓰는 거랑 국어 시험이랑은 완전 별개지, 별개!”


말 그대로 병 주고, 약 주는 화법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익숙한 풍경이다. 늘 그렇게 놀리고, 다독이고, 웃고, 웃기는 모습, 그러려니 하고 가만히 지켜보게 된다. 둘째가 누나에게 눌려 살아가는 유쾌, 활발한 막내 역할이라면, 빈틈을 용납하지 않는 사랑스러운 감시자가 첫째이다. 중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관찰자 남편, 세 사람의 표정을 하나하나 기록하려는 나. 그날 역시 아주 이상한 날이 아니라 아주 보통의 날이었던 것이다.


그때 이후로도 불쑥 떠오른다.

‘윤동주 시인은 국어 1등급을 받았을까?’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의 시가 누군가의 마음에 열었을 것이고, 어느 한 시절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일에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그날의 저녁 우리 집 식탁의 풍경처럼 말이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시는 그렇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웃게 하고, 누군가를 울게 하고, 어느 한 장면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일을 위한 시작 말이다.



윤슬작가

#윤슬에세이 #일상 #공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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