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고 모두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를 먹으면 노인이 되지만, 존중을 받는 이는 어른이 된다.”
어디선가 들었던 이 말을 나는 꽤 오래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 책이었는지, 강연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문장이 내게 말을 걸어왔던 순간의 감정은 아직도 선명하다. 언젠가 나도 나이를 더 먹게 될 것이다. 아니, 지금도 사실 적지 않게 먹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바란다. 시간이 흐른 끝에서 내가 마주할 모습이 단지 '노인'이 아닌, 존중받을 만한 '어른'이기를.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세월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낼 것인지는 분명 선택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으로 다시 학생이 되었다.
올해부터 학교에 다니고 있다. 만학도라는 말이 아직은 조금 낯설지만, 분명한 건 내가 다시 배움의 자리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그날도 평소처럼 학교에 도착했지만, 약간의 일이 생겨 주차가 늦었고 결국 강의실에 들어선 시간은 수업 시작 3분 뒤였다. 숨을 고르며 조용히 뒷자리에 앉았다. 다가오는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었고, 교수님은 방대한 분량 중 시험에 나올 핵심 내용을 추려 정리해주고 계셨다.기초가 부족한 나로선 정말 고마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수업 말미,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지금 정리해주신 내용, 강의자료실에 올려주실 수 있나요?”
교수님은 잠시 미소만 띠었고, 명확한 대답은 없었다.
그 침묵 속에서 잠시 생각했다.
‘자료는 참고일 뿐, 결국 스스로 공부하라는 뜻이구나.’
하지만 학생은 한 번 더 질문했다.
“지금 정리해주신 내용, 강의자료실에 올려주실 수 있나요?”
교수님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생각에 잠기더니,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며칠 뒤, 자료는 실제로 업로드되었다. 그 장면을 마음에 오래 남았다. 딱히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은 받기 어려웠고, 그래서였는지 질문을 던졌던모습에도 거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강의실 뒤편에 앉은 까닭에 그 학생이 수업 내내 친구와 수다를 나누고, 과자를 주고받는 모습이 실은 마음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학생도 이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 것 같기는 했다. 귓불까지 붉게 달아오른 얼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에서 조금 전의 당당함은 보이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 혼자 여러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저 나이였을 때 나는 어땠을까. 정말 그 학생보다 더 성실하고, 더 책임감 있었을까. 누군가 내 모습을 바라보며 지금의 나처럼 생각했을까. 그렇게 머릿속이 복잡해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평소 마음에 담아둔 말이 떠오르면서 또 하나의 느낌표가 만들어졌다.
‘멋진 어른도 쉽지 않지만, 멋진 학생도 쉽지 않구나.’
from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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