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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와 유연함, 그 사이에서

by 윤슬작가

나는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고지식하다는 말도 종종 들었다. 재미 삼아 본 타로 카드에서도, 사주팔자에서도 어김없이 빠지지 않고 나왔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규칙을 잘 따르는 사람이다. 굳이 어길 이유를 찾지도 않는 편이고, 사회적 약속이나 다수를 위한 원칙이라면 가능한 따르려고 노력한다. 물론, 사람들은 내게 그것이 단점이라고만 얘기하지는 않았다. 도덕의식, 윤리의식이 강하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칭찬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수시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지금의 행동이 융통성이 없는,

고지식함에서 비롯한 것일까?



얼마 전에도 비슷한 고민을 할 일이 있었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면서 학교에 가게 되었다. 주차 관련 공지 사항을 읽었고, 정해진 장소에만 주차하라는 안내가 있었다. 나는 당연히 그 말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의실에서 다소 먼 거리였지만, 안내문에 적힌 것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20분쯤 걸었을까. 조금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첫날 수업을 마치고 나올 때였다. 대부분의 차량이 강의실과 가까운 곳에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제야 나는 생각했다.



“어? 근처에 주차해도 되는 건가?”



뭐랄까, 혼자만 몰랐던 규칙 같은 것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뒤이어 또 다른 질문, 그러니까 수시로 나에게 던졌던 질문이 떠올랐다.



지금의 행동이 융통성이 없는,

고지식함에서 비롯한 것일까?



금방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다음 주차를 하게 되면서 주차 공간이 충분해 보이는데, 굳이 저렇게 멀리 주차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주차를 하고 뒤돌아서는데 내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라도 나의 주차 때문에 불편을 겪는 사람이 생기지는 않을까? 사소한 규칙 하나도 지키지 못하는 건 아닐까?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그 이후 몇 번 주차장을 살펴보니 공간이 넉넉해 보였고, 조심스럽게 스스로를 안심시켜 보았다. 속으로 이런 혼잣말을 하면서 말이다.


‘괜찮아. 이 정도 융통성은 있어도 되는 거야.’



나는 여전히 선택의 순간마다 고민한다. 어디까지가 원칙을 지키는 것이고, 어디까지가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인지 그 경계를 찾는 일은 여전히 나에게 어려운 숙제다. 무조건 원칙을 지키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인지 늘 고민하게 된다.



규칙은 질서를 만들어내지만, 때때로 불필요한 제약이 될 수도 있다. 반면, 융통성은 부드럽고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균형을 잃으면 쉽게 흔들릴 수도 있다. 너무 단단한 것은 부러지고, 너무 유연한 것은 형태를 잃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균형을 찾아가는 능력이 아닐까. 생각에 여기에 이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지켜야 할 것을 지켜나가고, 유연하게 바라봐야 할 것을 알아차리는 것.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성숙해지고 성장해가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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