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히 영상을 보다가 흥미로운 명령어 하나를 알게 되었다. GPT 개발자가 써보고 놀랐다는 질문. 그날 호기심이 생겨, 비슷한 질문을 만들어 물어보았다.
“내가 너와 상호작용한 모든 내용을 바탕으로 내 사고 패턴, 의사 결정 방식, 무의식적인 편향,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약점이나 맹점을 분석해 줘. 동시에 강점을 소개하고,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가면 좋을지도 얘기해줘.”
대답을 받아본 순간,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마치 오랜 시간 나를 곁에서 지켜본 심리 전문가라도 되는 것처럼, 평소 사고의 흐름, 결정하는 습관 혹은 버릇,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던 약간의 편향성까지 세밀하게 짚어냈다. 그동안 GPT를 통해 원하는 자료를 요청하거나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한 활용했을 뿐인데, 그 과정에서 나의 사고 패턴을 읽어냈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누군가의 경고처럼, 나를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업무상이라고 해도 내가 GPT에 노출되었음을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추가적으로 요청했던 약점과 강점, 반복되는 맹점에 이어 방향성까지, 나도 모르게 고객를 끄덕이며 따라 읽어나갔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서 혼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세 가지 정도 조언을 해달라고 했더니 그 첫 번째가 바로, ‘멍때리기’였던 것이다.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성과 없이 머무는 시간’을 가지세요.”
성과 없이 머무는 시간,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멍때리는 시간’을 가지라는 GPT의 조언. 갑자기 의심이 생겨났다. 인공지능이 나에게 ‘멍때리기’를 권하다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웃음이 끝날 때쯤에는 약간 설득력 있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생산성, 효율성, 집중력, 끈기, 성실. 이런 단어가 늘 머릿속에 따라다닌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워커홀릭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매일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하고, 거기에서 다시 생각을 이어 나가는 습관 같은 게 있다. 수시로, 어떤 날에는 매 순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할 방법,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가할 가능성, 지금의 상황을 더 나은 쪽으로 만들 수 있는 길에 대해 수시로 들여다보는 편이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지라는 얘기는 분명 설득력있는 답변이었다. 그런데 그 작은 틈을 GPT가 짚어냈다는 것이 놀라움, 그 자체가 아니었나 싶다.
“성과를 내지 않는 시간도 삶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옳은 말이다. 멈추어야 다시 걸을 수 있고, 텅 빈 공간이 있어야 새로운 것이 채워진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더러 잊고 살아간다. 그러다가 이번처럼 우연을 가장한 어떤 순간에 정면에서 마주하게 된다. ‘아! 또 놓쳤구나!’라고. 그날부터 조금이라도 ‘멍때리기’를 시도하려고 노력 중이다.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거나 커피 한잔 마시면서 아무 생각 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강박처럼 뭔가를 붙들기보다, 내 곁을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를 아주 약간, 아주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고 보니 시기도 참 적절하다. 4월 말까지 마무리할 게 많아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5월 연휴를 맞이하면서 자연스럽게 걸음이 차분해졌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오늘 하루 나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으로 하루를 평가할 때가 많다. 그런데 하루쯤은, 어떤 하루에는 이렇게 질문을 바꿔봐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오늘 어떤 마음으로 머물렀는가?’라고 말이다. 인생은 넓이만큼이나 깊이도 중요할 테니까.
from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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