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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하루가 아니라, 따뜻한 아침 한 끼면 충분하다

by 윤슬작가

실로 오랜만에 네 식구가 한자리에 모였다. 첫째는 자취를 시작하며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올게”라는 약속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간격은 한 달로 멀어졌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둘째는 학원 스케줄에 밀려 얼굴을 보기조차 쉽지 않다. 그렇게 하루, 이틀… 어느새 식탁은 남편과 나, 둘만의 자리가 되었고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는 자주 이런 말을 주고받게 되었다.


“시간이 참 빨리 흐르는 것 같아.”

“앞으로는 이런 시간이 더 많아지겠지?”



그날 아침, 상차림은 특별하지 않았다. 생선 한 마리, 소고기국 한 냄비, 잘 익은 물김치, 며칠 전 장터에서 사온 수박 몇 조각이 전부였다. 정성껏 차린 상이라기보다, 말 그대로 ‘집 밥’이라는 이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평범한 식사였다. 그런데도 식탁 위로 흐르던 공기는 어딘가 달랐다.겨울 끝자락에서 문득 맞이한 봄기운처럼, 설레고 따뜻했다.



30분 남짓한 식사 시간 동안, 우리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마치 어제의 대화가 끊김 없이 이어지듯, 어제의 웃음을 오늘로 가져오고, 오늘의 고민을 어릴 적 추억이 부드럽게 덮어주는 듯했다. 우리는 떨어져 지낸 시간이 무색할 만큼 익숙했고,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조언이 없어도 위로가 되었고, 설명이 없어도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 같다. 그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해질 수 있다는 것을. 마치 겨울 햇살이 등 뒤를 조용히 데우는 것처럼, 괜찮은지 묻지 않아도 괜찮고, 따뜻하냐고 확인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충만해 보였다.



식사가 끝난 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첫째는 잠깐의 휴식을 위해 누웠고, 둘째는 학원에 갈 채비로 분주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남편과 나는 조용히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제 우리는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삶은 흔히 사건이나 성과, 결과 중심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그러나 진짜 삶은 그런 ‘큰일’들 사이에 놓인 자잘하고 사소한 순간에 깃들어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뭔가 오래 기억될 대단한 무언가가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저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지금 이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마음 하나만 지켜가도 좋을 것 같다. 삶이 품고 있는 은밀한 비밀이 있다면, 아마 바로 이런 순간들을 말하는 게 아닐까.


from. 윤슬작가


#에세이 #윤슬작가 #작은 따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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