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의 일이다. 친구가 다소 머뭇거리며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이게 고민이라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그 말을 시작으로 그는 몇 번이고 반복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너무 예민한 거겠지?”
궁금한 마음에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며 “괜찮으니까 말해 봐”라고 하자, 그는 조심스레 상황을 설명했다. 얼마 만에 만나는 모임이었다고 한다. 기분 좋게 숟가락을 들어 올리려고 하는데, 한 친구가 건넨 말을 건넸다고 한다.
“너 요즘 무슨 일 있어? 얼굴이 왜 그렇게 안 좋아?”
이어 다른 친구들이 말을 덧붙였고, 바로 옆에 앉은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도 느꼈어. 지난달에도 그렇더니… 너 피부 관리 좀 해. 잘 챙기는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못 챙기네?”
친구는 고백했다. 정말 자신의 표정이 어두웠는지, 피부 상태가 나빴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농담인지, 걱정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운 분위기에서 멋쩍은 웃음만 지으며 내내 물만 들이켰다고 했다. 그날 밤,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말들이 끊임없이 귓가를 맴돌았다고 한다.
정말 그렇게 피곤해 보였나?
정말 얼굴이 말이 아니었나?
피부가 엉망이라는 것도 모르고 살아온 걸까?
그리고는 문득, 자신이 너무 사소한 일에 깊이 빠져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역시 내가 너무 예민한 게 문제야.”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나 흔들리는 자신이 답답하게 느껴졌다는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건… 내가 너무 예민한 성격이라 그런 거겠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민함’은 종종 ‘섬세함’과 같은 의미로 쓰이곤 한다. 감각이 예민한 사람들은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미세한 분위기를 포착하며, 타인의 감정을 빠르게 읽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상처도 빠르고 깊게 받아들인다. 지나간 말이나 표정 하나에 오래 머물고, 곱씹다가 결국 자신을 탓하기에 이른다. 어떤 이유로든 이런 리듬, 이런 감정의 흐름은 누구에게나 피로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무너지게 하기도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둔감력’이라고 생각한다.
‘둔감력’이라는 단어는 실은 조금 거칠고 낯설게 들린다. 마치 감정에 무딘 사람, 무심한 사람을 떠올리게도 한다. 하지만 본래의 의미를 들여다보면 그보다는 감정의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스스로 걸러내는 힘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둔한 것이 아니라, 단단함을 포함한 단어이다. 둔감력, 어떤 사람들은 이를 타고나는 성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예민한 성격을 지니고 있음에도 둔감력을 ‘익혀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얘기했다. 예민함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 감각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배우는 것만으로도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그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즉각적인 반응’이 아니라 ‘유예와 보류’.
누군가의 말을 바로 마음에 담기보다 그 말이 나온 분위기, 맥락, 그리고 말한 사람의 의도를 한 걸음 떨어져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거기에 어떤 말은 그 자체가 무례한 경우가 있어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상처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은 모든 말에 반응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이 모두 자신의 이야기라고 결론 내리지도 않는다. 만약, 예민함으로 인해 조금 지친 사람이 있다면, 둔감력을 키우는 방법이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조언해주고 싶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어떤 감정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지금 이 말, 정말 내 마음에 담아야 할 말일까?”
“이 상황, 어떤 분위기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였더라?”
from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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