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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한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by 윤슬작가

펠릭스 발로통의 소설 『유해한 남자』는 전혀 예기치 못한 사고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과정을 통해, 불완전한 인간 존재의 본질과 운명, 그리고 평생 짊어지게 되는 책임의 무게에 대해 집요하게 묻고 또 묻는 작품이다. 주인공 자크 베르디에는 스스로 의도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불행과 죽음의 중심에 놓인다. 설명하기 어려운, 기이한 사고들이 마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인물. 그는 그 자체로 ‘유해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야기는 어린 자크가 친구 벵상과 함께 강둑 위를 걷다 벌어진 사고로 시작된다. 햇살 아래 드리운 자크의 그림자로 인해 벵상은 중심을 잃고 다리 아래로 추락한다. 그리고 며칠 후, 결국 세상을 떠난다.



“나는 네 손을 느꼈어!”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그의 의도나 마음과는 무관하게, 그날 이후 자크는 친구를 아무 이유 없이 난간 아래로 떨어뜨린 아이가 된다. 그것은 곧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유해한 존재’로서의 시작점이다. 그러나 사고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후에도 자크 주변에서는 유사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새장을 칠하라고 건넨 염료로 인해 친구가 죽고, 자크의 목소리에 놀란 보석 세공사가 다쳐 결국 목숨을 잃는다. 또, 화실의 19세 모델 잔느는 자크의 곁에 있다가 난로에 데이는 사고를 겪는다. 이처럼 자크는 어떤 상황에서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번번이 결정적인 기여자’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반복되는 이 기이한 비극 속에서 그는 마침내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아주 불쌍한 청년이었다.”

“최선을 다했을지라도 진실이 전부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확하고 단순하게 말하자면, 나는 아주 불쌍한 청년이었다.”



그의 고백에서 묻어나는 자조와 체념,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현실에 대한 공포는 단순한 회피가 아니다. 자크는 이해하려 애썼다. 왜 이런 일들이 자신에게 반복되는지, 그것이 유전인지, 숙명인지, 아니면 단지 우연의 반복인지.



“나는 이해하고 싶었고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어떤 사나운 운명이 내 삶을 지배하는 것인지, …내가 어떤 질병에 걸린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 어떤 사악한 유전의 운반체인지.”



그는 이 모든 사고를 설명하고자 했지만, 끝내 설명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물론 때로는 자신의 과거와 아픔을 이용하기도 했다.



“거기서, 나는 여전히 과거를 이용했다.… 그들 덕분에 기만적인 가면을 쓰고 용의주도하게 내 실패를 덮을 수 있었고,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체념이라 서둘러 판단하면서 자존심을 유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유해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에 사로잡히게 되고, 무해한 존재로 돌아가기 위한 마지막 선택으로 ‘죽음’을 택한다. 소설 『유해한 남자』는 이렇게 끝난다. 그러면서 아주 정교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빠뜨리지 않는다. 우리는 과연 무해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삶이 의도하지 않은 것들로 우리를 시험할 때,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자크는 죽음을 선택했지만,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앞에 놓인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삶 속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진실은 무엇인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찾으라고 얘기한다. 유해함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지며 답을 찾아야 한다. 어쩌면 답은 끝내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질문을 붙들고 애쓰는 시간 자체가 의 미있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자크 베르디에의 삶에 안타까운 마음과 위로의 말을 전하며, 천천히 나의 그림자를 되돌아본다.

윤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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