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내가 제목을 묻지 않았어.
나는 대답했다.
작별하지 않는다.
주전자와 머그잔 두 개를 양손에 들고
걸어오며 인선이 되뇌었다.
작별하지 않는다._p.92"
끝내 작별하지 못한 이름들.
끝까지 아껴둔 이름들.
『소년이 온다』,『채식주의자』로 전 세계의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은 한강 작가가 다시 새로운 문을 열고 우리에게 말을 건네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깊고, 무거웠다.아주 단단한 무언가에 걸린 것처럼 묵직함이 자리를 뜨지 못하게 했다. 서울에서 제주로, 21세기에서 20세기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여정을 통해 오래된 상처와 마주하게 만들었다. 주인공 경하는 친구 인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제주로 향한다. 폭설이 내리는 섬, 칠십여 년 전 제주 4·3의 비극이 여전히 눈처럼 내려앉아 있는 그곳. 경하는 인선의 가족, 사랑, 아픔을 그곳에서 만나게 된다. 눈발 속에 꺼지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그들 속에 살아있는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과거를 재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비극의 현장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이지만, 그 안에서 존엄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끝내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심장이 뜨겁고,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만든다.
"왜 우리는 고통 속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을까.“
작가의 의도가 숨겨진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통, 사랑이라는 단어를 동시에 녹인, 예리하고 날카로운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따듯함만이 아니라, 뻐근하고 때로는 아프고 어떤 경우에는 누군가의 삶이 부서지는 것조차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손을 놓지 않고, 작별하지 않아야 지극한 사랑이라고. 한강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이번 작품이 지극한 사랑의 소설이기를 빈다“라는 말의 의미를 품은 질문이 아니었을까.
한강 작가의 책은 매번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다보니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물론, 늘 어떤 책임감 같은 게 느껴진다.
현재를 살아가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가.
고통스러운 과거를 견디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어떤 모습을 미래라고 얘기해야 하는 걸까.
어려운 질문을 하게 만드는 책, 나는 그런 책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한강 작가의 책은 어려운 질문을 넘어, 살아가는 동안 끝까지 외면해서는 안 되는 과제를 부여받은 느낌이다. 기억을, 누군가의 고통을 잊지 않고 함께 기억해주는 것.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을 함께 지켜주려고 애쓰는 것. 무엇보다 지극한 마음으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것. 이번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배운 것을 정리하라고 한다면 저 세 가지가 될 것 같다.
조금 더 인간다워지는 것, 조금 더 따듯한 사람이 되는 것, 조금 더 이성적인 노력을 하는 것. 독서는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세상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마음으로 책장을 덮어본다.
from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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