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는 오랫동안 작가의 기본기 훈련법이자, 독서의 깊이를 더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문장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작가의 언어를 손끝으로 흡수하는 이 반복의 행위는 분명하고 확실한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모든 도구가 그렇듯, 필사 또한 맹목적으로 진행할 경우 오히려 글쓰기의 본질에서 멀어질 수 있다.
1. 모방을 넘어서야 한다.
필사는 기본적으로 ‘따라 쓰기’다. 완성된 문장을 그대로 베껴 쓰는 과정이기 때문에, 창작의 자유로움이나 언어 실험, 구조적 도전과 같은 창의적 확장은 필사라는 특성상 이루어지기 어렵다. 특히, 창작 초기 단계에서 필사만을 고집하게 되면, 자신의 언어와 감각을 길러낼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모방’은 어디까지나 시작점일 뿐, 모방을 넘어 나의 문장으로 바꿔보는 연습이 중요하다.
2.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필사는 특정 작가의 문체, 호흡, 어휘 선택을 반복적으로 학습하는 과정이다. 이는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특정 작가의 스타일에 몰입하면 자신의 고유한 문체나 언어적 색깔을 잃어버릴 수 있다. 문장력은 익혀지지만, 개성은 흐려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3. 명확한 목표 의식을 가져야 한다.
필사의 가장 큰 위험은 ‘기계적 반복’이다. 단순히 따라 쓰는 일에 집중하게 되면 문장 뒤에 숨어 있는 의미, 작가의 의도, 정서적 흐름을 놓치기 쉽다. 텍스트와 능동적으로 대화하지 않고, 손만 움직이는 방식은 문학작품을 ‘따라 써야만 하는 대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반복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찰과 발전에 목적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4. 시간이 걸리는 작업은 분명하다.
필사는 오랜 시간과 정성을 요구하는 과정이다. 몇 줄 쓰고 결과가 바로 드러나는 활동이 아니다. 글쓰기 실력을 빠르게 키우거나, 당장 글을 써야 하는 사람에게는 필사의 느린 리듬이 조급함을 유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점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시대가 요구하는 ‘빠른 속도’와 필사의 ‘느림의 철학’이 만났을 뿐이다. 그런 까닭에 단기 효과를 원할 때 비효율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사는 왜 여전히 유효하다
필사는 창작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언어에 대한 감각을 몸으로 익히고, 문장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연습은 여전히 글쓰기의 핵심이다. 무엇보다 디지털 시대의 산만한 정보 소비 속에서, 한 문장에 집중하는 경험은 깊은 사유와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 까닭에 필사는 창작을 막는 벽이 아니라, 창작을 준비하는 문턱에 더 가깝다. 타인의 언어를 천천히 따라가며, 그 속에서 자신의 언어를 되찾는 과정. 그것이 바로 오늘날 필사가 여전히 가치 있는 이유다.
필사는 글자를 베껴 쓰는 시간이 아니라 생각을 확장하고 감각을 키우는 창작의 시간이다 – 윤슬
대구 서부시립도서관에서 필사 수업을 진행하면서 준비한 자료입니다. ‘필사의 한계’를 기억하여 ‘모방’을 넘어 ‘창작’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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