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작가님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작가님은 왠지 좌절 같은 건 안 하실 것 같아요.”
그 말에 담긴 존중과 기대를 잘 알고 있습니다. 흔들림 없이 묵묵히 제 길을 가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의미겠지요. 저는 잠시 미소 짓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럴 리가요. 저도 늘 좌절하는걸요.”
사실 그 말을 듣기 불과 한 시간 전에도 나는 지난달 공들여 준비했던 사업에서 탈락했다는 통보를 받은 참이었습니다. 게다가 며칠 전에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제가 도달해야 할 지점이 여전히 아득히 멀리 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실감하기도 했거든요. 열심히 하고 있고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노력의 결과가 언제나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결과 앞에서 느끼는 상실감과 좌절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실은 저의 감정은 생각보다 예민하고 깊어서, 타격감을 덜 느끼기보다 오히려 더 깊게 앓는 편에 가깝습니다.
다만, 저를 조금 다르게 만드는 태도가 있다면 이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좌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마음 한편에 열어두는 일입니다.
누구나 마음은 비슷할 것입니다. 시작과 끝이 동일한 선 위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 애쓴 만큼 결과가 따라오고 노력한 만큼 인정받기를 희망하는 마음 말입니다. 하지만 삶을 조금만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누군가의 성공담을 깊이 읽어보면, 시작과 끝이 일직선으로 놓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다들 너무 멀어서 보이지 않았다고 말하고, 때로는 길을 잘못 들어선 게 아닌가 싶어 밤잠을 설쳤다고 고백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끈기를 이야기하고 성실함을 강조하며, 끝까지 버텨낸 시간을 존중하는 것 아닐까요.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태도, 그 자체가 정답이라는 조언에 나는 누구보다 공감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끈기’란 단순히 같은 자리에 머물며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잘되지 않았을 때는 이유를 살피고, 실패했다면 방향을 점검하며,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 이것이 끈기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딱 하나만 보태자. 딱 한 걸음만 더 나아가자.
완전히 달라지지 않아도, 단번에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한 선택을 하고, 조금 더 명확하게 판단하며, 조금 더 깊어진 시선으로 방향을 갖추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매일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좌절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좌절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제가 계속 쓰고, 다시 시도하며,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실패를 부정하지 않고 좌절을 숨기지 않되, 결코 그 자리에 고여 있지 않겠다는 태도. 이런 마음들이 모여 저를 다시 노트 앞에 앉히고, 삶을 들여다보게 하며, 다시 몸을 움직여 나만의 문장을 쓰게 합니다. 오늘도 저는 ‘완성’보다 ‘진전’을 향합니다. 이런 하루하루의 선택이 쌓여, 훗날 ‘오늘의 좌절’을 웃으며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하면서 말입니다.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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