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독서와 공부, 어떻게 정의하고 계시나요? 저는 독서와 공부를 조금 다르게 정의합니다. 책을 펼치는 행위는 같을지라도, 그 마음의 결이 향하는 목적지는 전혀 다르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실 책상 앞에 앉은 뒷모습은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은 완전히 다른 색깔, 방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끔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공부해야지”라고 다짐하고, 문제집을 풀면서 “독서실에 간다”라고 얘기합니다. 독서와 공부, 이 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공부(工夫)’는 내가 원하는 곳에 도달하기 위해 지도를 외우는 일과 같습니다. 목적지가 선명하고, 그곳에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도착하기 위해 길을 익히는 치열한 과정입니다. 제가 늦은 나이에 다시 학교로 향한 것 역시 이런 ‘공부’를 위해서였습니다. 모르는 것을 끝내 알아내고 싶다는 마음, 머릿속의 빈 공간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공부는 정직합니다. 성실하게 길을 익히면 정답이든 해답이든 보상이 기다리거든요. 그것은 생존을 위한 근육이 되기도 하고, 다가올 시대를 건너갈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반면 ‘독서’는 조금 다릅니다. 지도를 접어두고 낯선 골목을 천천히 산책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어디로 가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걷는 동안 마주치는 풍경과 바람의 냄새를 만끽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저자의 생각에 나만의 물음표를 던지고, 공감의 대목에서는 무릎을 치며 나의 어제와 오늘을 되짚게 됩니다. 책 속의 문장을 중심으로 내 안의 기억, 추억, 그리고 미래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 무지(無知)를 깨치고 앎의 기쁨을 누릴 때 번지는 미소는 공부와는 또 다른 결의 행복을 줍니다.
누군가 정리해놓은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공부라면, 독서는 나만의 질문을 발견하고 나만의 답을 창조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지금 손에 든 책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시나요? 그렇다면 지금 독서가 아니라 공부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을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압박, 단 하나의 문장도 놓치지 않겠다는 조바심이 마음의 짐이 되지는 않았는지 살펴야 합니다. 모든 문장을 기억할 필요도, 완벽히 이해할 때까지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아도 됩니다.
공부가 머리를 채우는 일이라면, 독서는 마음을 채우는 일입니다. 확신이 필요할 때는 지도를 펼쳐 공부하시고, 가벼운 숨 고르기가 필요할 때는 지도를 내려놓고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를 추천드립니다. 단 한 줄, 내 마음을 울리는 단 하나의 문장만 남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 정답을 찾지 못했다고 자책하기보다 근사한 질문 하나를 품고 잠들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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