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지 못해도, 알려주지 않아도

by 윤슬작가

아주 가끔, 친정 아버지의 책상이 먼저 떠오른다. 책상이 따로 없던 시절, 아침 밥상은 밤마다 아버지의 책상으로 변신했다. 지금으로부터 서른 해, 아니 그보다 더 오래된 기억이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자재 관리 업무를 맡고 계셨다. 생산 일정과 자재 흐름이 맞물리는 일이라 퇴근 시간 안에 끝내지 못한 업무는 종종 집까지 따라왔다. 서류 봉투를 한쪽 겨드랑이에 끼고 들어오시던 모습이 아직도 또렷하다.


아버지의 책상 위에는 늘 이면지가 놓여 있었다. 회사에서 쓰고 남은 종이들, 자료를 정리하고 버려질 예정이었던 것들이다. 하지만 뒷면은 깨끗했고, 아버지는 그곳을 연필로 빼곡하게 채웠다. 아버지는 본래 글씨를 잘 쓰셨다. 어릴 적 나는 모든 남자가 아버지처럼 글씨를 쓰는 줄 알았다. 정돈된 글씨가 믿기지 않을 만큼 단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줄과 줄 사이를 채웠다. 마치 종이가 허락한 마지막 공간까지 모두 채우겠다고 결심한 사람 같았다. 그 풍경은 당시의 나에게 상당히 낯설고, 약간 이해하기 어려웠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절약이 몸에 밴 기질이었을까. 아버지는 이면지에 여백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이면지는 아버지에게 ‘남겨진 것’이 아니라 ‘아직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자료를 정리하다가, 계산을 하다가, 잠시 다른 생각에 잠길 때도 연필은 늘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채워진 이면지들이 거실로 나올 때면 나는 멀찍이서 바라보곤 했다. 공부하는 나보다도,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보다도 더 촘촘한 글씨들. 왜 그렇게까지 하실까. 어린 나는 질문을 품었지만, 굳이 이해하려 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질문은 사라지고, 장면만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가 가끔씩 떠올랐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내가 아버지를 닮아 있다는 것을.


사무실이든 집이든, 나에게는 늘 이면지함이 있다. 인쇄하고 남은 종이, 회의 자료의 뒷면, 원고 출력물. 나는 그것들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펼쳐 놓고 일정을 정리하고, 생각을 적고, 구조를 그리고, 낙서하듯 문장을 채운다. 이면지를 모아 링을 끼워 작은 노트처럼 만들거나, 스프링을 달아 연습장으로 쓰기도 한다. 노트북과 함께 가방에 넣어 다니는 몇 장의 이면지. 처음에는 의식하지 못했다. 내가 왜 이 종이들을 들고 다니는지, 언제부터 이런 습관이 생겼는지조차 몰랐다. 그러다 깨달았다. 궁금해하기만 했던 풍경 속으로 내가 어느새 들어와 있었다는 사실을.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 자리, 질문으로만 남겨두었던 그 자리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을.


누군가 나에게 왜 이면지를 쓰느냐고 묻는다면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절약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단순하다. 이면지를 채우는 동안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는 감각이 좋고, 깨끗한 뒷면을 바라보며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호기심이 발동되기도 한다. 가끔은 이면이라는 개념이 확장되어 하루의 이면, 마음의 이면, 경험의 이면으로 상상력이 이어지기도 한다.


삶에는 당장 이해되지 않는 장면들이 더러 생겨난다. 그럴 때면 그저 낯설고, 때로는 답답하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저절로 의미가 드러난다. 설명하지 않아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말이다. 그런 반면 어떤 일들은 시간과 상관없이 끝을 정하지 않은 채 계속된다. 오래전 이면지를 빼곡하게 채우던 아버지의 흔적이 내게 발견되는 이런 날들처럼.


지난 추석, 친정에 갔을 때 아버지의 책상 위에는 작은 노트 하나가 놓여 있었다. 사자성어와 한자에 누구보다 밝았던 아버지가 요즘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노트에 몇 줄씩 적어 둔다고 엄마에게서 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버지는 여전했다. 정돈된 글씨로 여백의 미를 거부하고 계셨다. 빼곡하게 채워진 아버지의 글씨들. 이제는 질문도 사라졌다. 이해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너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설명하지 못해도, 전해지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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