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노래방

by 윤슬작가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12월 31일과 1월 1일이 되면 해돋이를 보러 갔다. 새해의 첫 해를 함께 본다는 이유만으로도 밤공기를 견디는 일쯤은 대수롭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풍경이 바뀌었다. 친정이나 시댁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집 뒤 산에 오르거나 부모님과 떡국을 나누는 방식으로 새해를 보냈다. 새해를 맞는 형식은 그때그때 조금씩 달라졌지만, 함께 있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했다.


그러다가 시절은 또 한 번 방향을 틀었다. 첫째는 대학에 들어가 자취를 시작했고, 둘째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두 아이를 데리고 해돋이를 보러 가는 일은 ‘당연한 연례행사’가 아니었다. 각자의 일정과 생활 리듬이 생겼고, 함께 움직이기에는 계산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지난 1월 1일, 우리 부부는 조금 다른 계획을 세웠다. 친정과 시댁을 차례로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짧지만 분명한 여행. 아이들 일정이 맞지 않으면 남편과 둘이 다녀오자고 정리해두었는데, 감사하게도 두 아이가 즐거운 마음으로 동행에 나섰다. 그 순간, 이미 새해 선물이 도착했는지 모르겠다.


차에 오르자마자 언제나처럼 첫째가 자연스럽게 DJ를 자처했다. 발라드에서 랩으로, 랩에서 팝송으로, 장르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드는 선곡이 이어졌다. 더 놀라운 건 그 노래들을 둘째가 거의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약 두 시간, 남편의 차는 언제나 그렇듯 ‘달리는 노래방’이 되었다. 중간중간 아빠가 졸릴까 봐 아빠 취향의 노래를 하나씩 끼워 넣는 센스, 엄마를 위해 가사가 나오는 휴대폰 화면을 슬쩍 건네는 배려. 너무나 익숙한, 그래서 자연스러운 풍경이 연출되었고, 그런 일련의 사소함이 차 안을 더 따뜻하게 채웠다.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박자를 타며, 아무 말 없이도 같은 리듬을 공유했다.


가끔은 그 안에서 중요한 대화가 오가기도 한다. 한 공간에서 두 시간 가까이 함께 앉아 있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크면서, 그런 ‘중요한 대화’마저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서로의 삶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잘 지내다가 만나는 것, 그리고 같은 방향으로 잠시라도 함께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만함을 느껴진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미소 짓는 남편,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몸을 흔드는 나. 우리는 그렇게 길 위에서 달린다. 단순히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떤 마음을 지켜야 하는지를 확인하며 달린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말이다. 가사를 몰라 소리 높여 함께 노래를 부르지 못해도, 박자를 정확히 맞추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같은 차에 타고 있다는 사실, 같은 노래를 듣고 있다는 감각, 그리고 그 시간이 언젠가 추억이 되어 우리를 미소짓게 할 거라는 믿음이다.


우리 가족에게 ‘달리는 노래방’은 하나의 ‘은유’처럼 남아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잘 아는 곳이 아니어도, 각자의 음이 조금씩 달라도 괜찮다는 것. 함께 달릴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우리는 오늘도 그렇게, 노래를 틀고 길 위에 오른다. 인생의 다음 구간을 향해.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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