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의 나는 운동을 하러 나서는 걸까,
아니면 산책을 하러 나서는 걸까.
겉모습만 보면
둘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집을 나서고, 발을 옮기고, 몸을 이동시킨다.
풍경이 바뀌고, 공기가 달라진다.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걸음은 비슷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남는 감각은
완벽하게 다르다.
운동을 하러 나선 날,
나의 목적은 분명하다.
발걸음은 바쁘고,
마음은 숫자를 센다.
오늘은 오천 보, 가능하면 만 보.
허벅지에 힘을 주고,
보폭을 의식한다.
눈은 앞을 향해 있지만,
의식은 발에 매달려 있다.
몸을 움직이는 동안
머릿속은 오히려 분주하다.
잘 걷고 있는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오늘의 성실함에
충실한지 끊임없이 확인한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항상 비슷한 문장이 나를 기다린다.
“오늘도 해냈다.”
그 문장은 달콤하고 단단하다.
성취감이라는 이름의 작은 증명서.
나는 그것을
가끔, 꼭,필요로 한다.
반면, 산책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우선 산책에는 목표가 없다.
완주도, 기록도, 기준도 없다.
걷기 운동이 들숨이라면,
산책은 날숨에 가깝다.
몸의 힘을 빼고, 마음의 속도를 늦춘다.
산책을 할 때는
발보다 눈이 먼저 움직인다.
길가의 나무, 벽에 붙은 작은 포스터,
어제와 조금 달라진 하늘의 색.
가던 길을 멈추고, 허리를 숙이고,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걷는다.
사실 이 순간에
멈추는 것은 걸음이 아니라 마음이다.
세상의 시계와 잠시 멀어지고,
나는 나만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
걷기 운동을 하는 동안
몸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산책을 하는 동안
마음은 뒤로 물러서기를 즐기고,
체감온도와 다른 계절을 넘나든다.
열정적이지 않아도 않고,
부지런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아무것도 이루지 않아도 무방한.
내가 산책에서 돌아올 때
주머니에 넣어오는 것은
주로 이런 것들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어떤 날에는
목표를 향해 성실히 걸어야 하고,
어떤 날에는
방향 없이 떠다니는 시간이 필요하다.
앞을 보고 걷는 날도 있지만,
사방을 살피며
두리번거리는 날도 있다.
멈춰 서지 않기 위해
달려야 할 때가 있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멈춰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신발 끈을 맬때마다
가장 먼저 물어본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해결을 위해 나가는 길인지.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기 위해 걸음인지.
숙제처럼 느껴지는지.
여행처럼 떠다니고 싶은지.
이런 질문 하나를 품고 나서는 길이라면,
속도가 느려도 괜찮고,
방향이 흐릿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그 길의 주인공은
결국 ‘나’일테니까.
from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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