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by 윤슬작가

친정엄마는 늘 비슷한 말을 했다.
사람을 너무 쉽게 믿지 말라고.

아버지는 사람을 잘 믿는 분이었고, 그래서 자주 손해를 봤다. 말 한마디에 마음을 내주고, 부탁 앞에서 계산을 미루다 곤란한 일을 겪곤 했다. 엄마는 그 모든 시간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반복해서 말했다.


“사람 말을 그대로 믿으면 안 돼. 아닌 건 걸러낼 수 있어야 해.”


어릴 적 아이들에게 읽어주던 동화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아빠 고양이는 길을 떠나는 새끼 고양이에게 늘 조심하라고 했다. 누군가의 뒤를 따라설 때는 반드시 한 번 더 주위를 살피라고, 등 뒤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라고. 동화 속 문장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농담처럼, 어른들에게는 의도적으로 전해지는 말이었다.

돌이켜보면 삶에서도, 이야기 속에서도 어른들은 늘 같은 조언을 건넸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라고. 앞만 보지 말고, 뒤도 살피라고. 나 역시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해왔다. 하지만 생각과 행동은 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먼저 결정을 내려버리는 순간은 얼마나 많은가.


며칠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미 경험한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았다고 했다. 아프지 않았고, 후유증도 거의 없었다고 했다. 모두 가볍게 말했고, 그 말들은 내 마음을 빠르게 안심시켰다.


‘괜찮겠지.’
그게 전부였다.


최악의 상황을 묻지 않았고, 부작용이나 주의사항을 꼼꼼히 살피지도 않았다. 기분이 허락했고, 마음이 괜찮다고 말했기에 그대로 행동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며칠을 고생했다.


내 생각보다 내 몸은 훨씬 정직했다. 결국 이틀을 침대에 누운 채 보내며, 미뤄두었던 질문들을 하나씩 꺼내 들었다. 왜 미리 알아보지 않았을까. 왜 한 번 더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러다 문득 이런 결론에 닿았다. 좋은 말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 그 말을 기억하지 못했던 내가 부족했던 건 아닐까 하고.


몽테뉴는 말했다.
“인간의 가장 큰 불행은 경험에서 배우지 않는 것이다.”

며칠을 고생하는 동안,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다음에는 기분만 믿지 말자고. 마음이 앞서더라도 질문 하나쯤은 덧붙이자고. ‘괜찮다’는 말 앞에서 한 번쯤은 멈춰 서 보자고. 그런데 동시에 이런 생각도 스쳤다. 어쩌면 나는 비슷한 상황이 오면 또 같은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선택은 그 찰나에 포개진 감정과 분위기, 컨디션의 결과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반성은 유난히 길어졌다. 어떻게 하면 ‘어쩔 수 없는 그 순간’을 조금 더 덜 다치며 지나갈 수 있을지, 같은 장면 앞에서 조금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지를 오래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뾰족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노력은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 또다시 벌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면서 결론은 늘 비슷한 지점을 향했다. 혹시라도, 만약 또다시 비슷한 순간이 다시 온다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더라도 나를 지나치게 몰아세우지는 말자고. 끝까지 믿어줘야 할 사람은 결국 ‘나’여야 하지 않을까 하고.


어쩔 수 없는 순간은 분명 존재한다. 알면서도 그렇게 되는 날도 있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실수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실수 속에서 아주 작은 배움 하나쯤은 건져 올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혹시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더라도, 그 안에는 분명 어쩔 수 없는 배움도 함께 들어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어보고 싶다.

from 윤슬작가


#윤슬에세이 #감정기록의힘 #기록디자이너

매거진의 이전글앞만 보고 걷기도 하고, 사방을 살피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