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남자, 세 사람

by 윤슬작가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노트북을 챙겨 카페로 향했고, 다행히 내가 좋아하는 자리가 비어 있었다. 창가 쪽,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자리. 일을 시작하기에 적당한 거리감과 온도를 가진 공간이었다. 늘 그렇듯 노트북을 펼치고 다이어리를 확인하며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적어나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옆 테이블에 앉은 세 명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먼저 건너왔다.


“정년이 이제 진짜 코앞이잖아.”
“그래서 산업기사 자격증을 하나 더 준비하려고.”
“무슨 강의 영상 봤다고 하지 않았어?”
“막막하지 않아?”
“막막하지. 근데 이대로는 불안해.”
“아직 괜찮다고는 하지만…”


평소라면 카페의 소음은 배경음악처럼 스쳐 지나간다. 옆자리의 대화가 무엇이든 내 귀는 쉽게 그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은 조금 달랐다. 낯설지 않은 단어들, 자주 듣고, 자주 고민하고, 자주 생각해온 주제들이었다. 정년, 제2의 직업, 노후 준비, 불안과 두려움. 준비해야 할 것 같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마음에 관한 이야기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내 귀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자꾸만 그들을 향해 몸이 기울었다.


세 사람은 대략 마흔 후반에서 쉰 초반쯤으로 보였다. 말투는 조심스러웠고, 표정은 진지했다. 웃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웃음은 가볍다기보다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한 장치처럼 느껴졌다. 한 사람이 농담을 던지면 잠깐 웃다가도, 이내 다시 무거운 주제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마치 각자의 방식으로 “지금 이대로 괜찮을까?”를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노트북 화면을 켜고 몇 줄을 적었지만 집중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지금, 세 남자가 아니라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구나.


인생의 중반을 넘어서면 성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직함도, 직무도, 회사의 이름도 잠시 뒤로 밀려난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훨씬 더 원초적인 질문이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대로 떠밀려가는 기분을 떨쳐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바라보면, 그들의 질문은 하나의 통과의례에 가깝다. 청년 시절의 도전과는 이미 거리가 있고, 노년의 안정과도 아직 닿지 않은 애매한 지점.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엔 늦은 것 같고, 그렇다고 지금의 자리에 머물기엔 마음이 가장 불안한 시기다. 이 시기를 마주하면 누구든 ‘다음 단계’를 모색하게 된다. 생존의 방식이 달라지고, 나를 지탱해온 정체성의 기준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 시절에는 정답이 없다. 이렇게 하면 된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그저 서로의 말을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그래”라고 말해주는 것이 전부인 경우가 많다. 그 시절을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세 남자, 아니 세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며 생각했다. 이 시절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비슷한 풍경 앞에 서 있는 게 아닐까. 더 잘 살고 싶고, 덜 후회하고 싶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감각을 붙잡고 싶은 마음. 누구도 대신 결정해주지 않는 문제 앞에서, 각자의 답을 마련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발을 떼고 있는 건 아닐까.


그날의 풍경은 누군가의 고민을 엿들은 시간이 아니라, 인생의 한 시절을 목격한 경험에 가까웠다. 누구나 한 번쯤 지나야 하는, 답이 없는 구간. 그 구간을 건너는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불안과 바람의 결만큼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며 살아간다. 이름도, 사연도 모른 채. 그러면서도 위로와 응원을 전하고 싶은.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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