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다시 읽으며

by 윤슬작가

솔직히, 같은 책을 일곱 번이나 읽는 일은 흔치 않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다시 만나게 되는 책이 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바로 그런 책이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운명처럼 다시 마주했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이십대였다. 지금 돌아보면, 뭘 잘 모르면서도 괜히 아는 척하고 싶던 시절이었다. 자기계발서를 중심으로 닥치는 대로 읽어 나가던 때, 이 책을 집어 든 이유도 지극히 단순했다. 톨스토이의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얇다는 점. 읽은 척을 할 수 있겠다는, 다소 오만한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분량을 떠나, 그때 나는 이 책을 꽤 힘겹게 읽은 기억이 난다. 이반 일리치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의 고통은 과장처럼 느껴졌고, 감정의 변화는 지나치게 길게 늘어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까지 붙잡고 있지?”


짧은 이야기인데도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고, 주변 인물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빨리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결국 몇 장은 건너뛰듯 읽어 내려갔고, 책을 덮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이 책을 다시 펼칠 일은 없겠다고.


하지만 삶은 늘 예상 밖에서 방향을 튼다. 서른을 넘기고,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나와 내 삶을 뒤엉키게 만들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우연처럼 이 책을 다시 펼치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책 속의 개념이 아니라, 내 일상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던 시간. 그때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이전에 이해되지 않던 행간 사이에서 나는 수시로 걸음을 멈췄다.


"아... 어쩌면..."

“아, 이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거였구나.”


그러면서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감정과 행동이 눈에 들어오면서, 그의 고통이 아니라 그가 고통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그날 이후였을 것이다. 이 책은 내 안에서 완전히 자리를 바꾸었다. 한 번 읽고 끝나는 책이 아니라, 어떤 시기가 되면 다시 찾게되는 책이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대대적으로 책을 방출하던 날에도 끝까지 남았으니 말이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중학생, 고등학생들과의 독서·글쓰기 수업을 통해 이 책을 몇 차례 다시 읽게 되었다. 그때는 감정보다 구조에 집중했다. 한 사람이 무너져가는 과정을 마치 현미경 아래에 놓인 것처럼 정교하고 세밀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공유했다. 그것은 비극이라기보다 오히려 하나의 흐름에 가까웠다. 삶이 만들어낸, 피할 수 없는 방향.


그리고 이번, 독서모임에서 또다시 이 책을 만났다. 아침에 읽고, 점심에 다시 펼치고, 저녁에 또 몇 장을 넘겼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이 책을 통해 나의 삶, 시간을 통과해 온 것이 아닐까. 이십 대의 나, 삼십 대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에 이르는 동안 모습도 다르고 생각도 달랐는데, 함께 살아내고, 함께 지나왔으니 말이다.다음에는 어디에서 이 책을 펼치게 될까. 어떤 마음으로, 누구와 함께 읽게 될까. 문득 궁금해지는 아침이다.


_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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