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메이커

by 윤슬작가

우리 집 거실에 둘째의 책상이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자리 잡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자기 방보다 거실이 더 낫겠다는 아이의 의견은 예상보다 확고했고, 그 말에는 설명보다 결심이 먼저 담겨 있었다. 결국 식탁 옆에 책상이 놓였고, 거실은 조금 낯선 풍경을 갖게 되었다.


밥을 먹는 자리와 공부를 하는 자리가 나란히 놓이자, 공간의 성격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정체성에 혼란이 생긴 느낌이라고나 할까. 소파에 기대어 늦은 시각까지 휴대폰을 보던 남편의 모습에서는 자연스레 조심스러움이 묻어났고, 베란다에서 맥주나 막걸리를 기울이던 순간도 무한리필, 무한정 계속되는 게 아니라, ‘언제 정리해야 할까’를 두고 내적 합의를 이뤄야했다. 책상과 식탁이 나란히 제 목소리를 내는 거실, 적당한 긴장감도 함께 자리를 잡았다.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본다. 학원을 정리하고, 집에서 스스로 공부해보겠다고 말한 아이. 그 선택이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아니, 묻지 않기로 했다. 다만 그보다는 다른 생각 하나를 더 오래 붙잡고 머물렀다. 공부를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것,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고마운 일 아닐까라고. 결과보다 결심이 먼저라는 사실을, 아이를 통해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문득 어떤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페이스 메이커.’


마라톤에서 페이스 메이커는 기록을 세우는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가 끝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속도를 조율하고, 리듬을 지켜주는 사람이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무너지지 않도록, 그러나 멈추지 않도록 곁에서 호흡을 맞추는 사람이다. 아이를 지켜보며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결승선을 재촉하는 사람이 아니라 옆에서 함께 숨을 맞추는 사람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하나였다. 조용히 곁을 지키는 것이었다.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 함께 달린다는 마음으로.


생각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 단어는 아이에게만 머물지 않고, 천천히 나에게로 건너왔다. 요즘의 나는 이전보다 훨씬 단순한 삶을 살고 있다. 해야 할 일이 많아진 것은 명확한 사실이지만, 그 모든 일은 하나의 방향으로 모이고 있다. 사람을 만나는 방식도 비슷하다. 넓게 확장하는 것보다 깊게 스며드는 쪽을 택했다. 많이 아는 것보다, 오래 기억할 수 있는 관계를 선택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점점 ‘더’가 아니라 ‘적당함’에 마음이 간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적당함’ 말이다. 그 덕분에 삶은 조금 더 단순해졌고, 다정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삶이 더 지혜로운 삶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정답을 안다고 말하기에는 나 역시 아직 길 위에 서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느껴진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속도와 방향이 적어도 나를 무너지게 하는 길이 아니라, 살아가게 하는 길이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에게 속삭여준다.


지금처럼 적당함을 유지해도 된다고,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금 느려도 괜찮다고, 조금 돌아가도 괜찮다고. 그리고 이 말이 거실 한켠에서 자신의 속도로 책장을 넘기고 있는 아이에게도 닿기를 희망하면서.


_기록 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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