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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로 Nov 28. 2023

희망퇴직을 받겠다고 한다

남얘기가 아닐지도

 지난밤 기이한 꿈을 꿨다. 아이와 둘이 있던 공간이고, 우리가 있던 공간과 외부 공간 사이에 어른 주먹 두 개보다 조금 작을 듯한 파이프가 있었는데, 그 안으로 앵무새 한 마리(컬러가 화려했으니)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파이프안에 몸이 끼어있는 듯한 느낌. 아이가 손을 내밀어 갇혀있던 새를 쑥 빼주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자기 발밑으로 새를 내려놓더니 무참히 밟았다. 정확히는 그 위로 점프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 없이 고무공처럼 눌리는 정도의 비주얼이긴 했어도 그 순간의 잔인함에 너무 놀라 비명을 지르고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공감의 폭이 또래보다 탁월하게 넓고 깊어 수시로 눈물이 그렁한 아이라 이름을 잘못 지었나까지 생각하게 하던 터라(이름 한자에 불쌍히 여기다는 뜻이 있다) 놀라움이 더 컸다. 어디선가 나타난 친정엄마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설명하려고 했는데 그저 어버버거렸고, 심장이 크게 뛰었다. 그러던 중에 깼다. 순간 그게 꿈이어서 너무 다행이다 싶었지만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는 데에 다소 시간이 걸렸다.


 출근길 네이버를 열고 검색을 했다. '새를 죽이는 꿈'.

비슷한 질문을 한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대부분이 불안감을 담아 문의했는데, 답을 달아주는 이들은 마치 불안한 질문자를 달래듯 그럴듯하게 긍정적인 해석을 달아주었다. 근심이 해결될 꿈이라고.

상당수의 블로그는 새가 나오는 건 성공과 희망의 상징이지만 그것이 죽는다는 건 흉몽이라고 했다.

문제는, 내가 죽인 게 아니라 아이가 그랬다는 건데 그런 해석은 없었고, 있었다고 해도 불길했을 것 같아 더 볼 수 없었다.

태어나 한 번도 내 꿈이 용하다거나 꿈이 맞았다고 느낀 적이 없었기에 털어버리려 하는 중이다.


 이런 꿈을 꾼 건, 아마도 내 심리적 불안감 때문이지 싶다.

마음이 흔들렸다는 게 자존심이 상해서 연관 짓고 싶지는 않지만, 어제 오후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10년을 몸담았던 이 회사가 근래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인 건 물론이고 아이를 키우며 다니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라 선뜻 옮겨지지 않았다.

친정엄마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가 초등학교1학년인 지금까지 큰 걱정 없이 다닐 수 있었던 건 회사의 친화적인 시스템과 복지 때문인 걸... 그래서 나는 뼈를 묻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 회사가 버텨줬으면 좋겠다고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했었다.


 '퇴직을 '희망'하지 않으면 문제없잖아?' 생각하려고 했는데, 이다음 수순은 권고사직일 거라고들 한다. 일을 잘 못하거나 근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희망퇴직이나 권고사직의 대상일 거라고 해맑게 생각했었는데, 막상 그런 분위기가 닥치고 알았다. 일을 잘하고 평가가 높아도 대상이 될 수 있다. 누가 희망하지 않는 희망퇴직을 맞게 될지 모른다.

다만 지금은 너무 이르니 이번에는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이기심을 부려본다. 마음의 준비가 되고 나서 '희망'할 때 나갈 수 있기를. 또한 이 흔들림이 나와 내 동료들에게 큰 풍파로 이어지지 않고 잦아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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