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처가 말해질 가치가 있다고 믿기로 한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오랜 고민이었다. 나에게는 너무 중요한 이야기라 눈물을 뚝 그치고 정신을 똑바로 차린 다음에 글을 쓰고 싶은데,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자꾸 눈물이 났다. 독자가 글을 읽기도 전에 작가가 울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쉽게 글을 시작할 수 없었다. 아직도 내 고통이 어렵고 두렵지만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하며 오래도록 해묵은 이 길고 어려운 여정을 시작해보려 한다.
내게 끊임없이 많은 용기와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는 지독한 자기 검열 때문이었다. 나는 나와의 싸움에서 자꾸만 패배했다. '나의 슬픔도 고통일까?' '내가 그저 나약한 거 아닐까?' '남들 다 잘 사는데 나만 유난 떠는 거 아닐까?' 내면을 잠식한 검열은 끊임없이 내 고통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내가 가지고 태어난 환경을 생각하면 나는 잘 살아야 마땅해 보였다. 어떤 이는 내게 직설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너는 네가 가진 게 많은데 그러면 안 되지." 나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하지만 더 이상 숨고 싶지 않다. 그러기로 마음먹었다. 스스로를 얽매는 검열에서도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그러니 일단 이렇게 시작해야겠다.
앞으로 나는 경계선에 놓여 있던 폭력의 역사를 복기할 것이다.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말하려는 게 아니다. 내 고통이 큰지, 작은지 말하려는 것은 더욱이 아니고 사람들이 나의 고통을 인정해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내 몸과 정신에 트라우마를 새겼는지, 그로 인해 나는 어떤 성향과 정신병적 행동 양상을 띠게 되었는지 탐구하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자기 검열을 헤쳐나가면서 나의 고통을 인지하고, 인정하고 단어를 찾아 생존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 과정을 천천히 기록하고 싶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마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나는 숨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