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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들렌 Aug 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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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시집] i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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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만났던 날에 대해 너는 매일매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가 어떤 용기를 내어 서로 손을 잡았는지 손을 꼭 잡고 혹한의 공원에 앉아 밤을 지샜는지. 나는 다소곳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우리가 우리를 우리를 되뇌고 되뇌며 그때의 표정이 되어서. 나는 언제고 듣고 또 들었다. 곰을 무서워하면서도 곰인형을 안고 좋아했듯이. 그 얘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게 좋았다. 그 얘기를 하는 그 표정이 좋았다. 그 얘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게 좋았다. 그날의 이야기에 그날이 감금되는 게 좋았다. 그날을 여기에 데려다 놓느라 오늘이 한없이 보류되고 내일이 한없이 도래하지 않는 게 너무나도 좋았다. 처음 만났던 날이 그리하여 우리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게 좋았다. 처음 만났던 날이 처음 만났던 날로부터 그렇게나 멀리 떠나가는 게 좋았다.


(중략)


'그날의 이야기가 그날에 감금되는 게 좋았다.' 처음 손 잡았을 때,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쉐이크 먹었을 때, 할 일을 끝냈을 때, 바다를 한없이 바라봤을 때. 감금되는 날들을 손에 꽉 쥐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 날을 그리 자주 오지 않으므로. 얼려둘 수 있는 순간 그 자체로 어떤 용기를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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