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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들렌 Apr 29. 2019

[존버 언시생활기] 부스러기 모으기

보은언니가 떠났다

[존버 언시생활기]는 언시생활하면서 일생에 떨어지는 조각 부스러기를 모아서 남겨볼까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매주 일요일이나 월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보은언니가 떠났다
‘보은언니가 떠났다’는 문장으로 이 연재를 시작하고 싶다. 정희진 말처럼 역시 모든 예술은 버림받은 사람에게서 시작되는 건가. ‘합격했다’, ‘탈출했다’같은 말을 쓸 수도 있는데, 그 말들은 그 당시 내 절절한 허전함을 드러내지 못한다. 언니는 언시반에서 내가 유일하게 의지하던 사람이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이 누굴 이렇게 의지하고, 좋아했던 적이 있나 싶다. 성격상 누구한테 의지하고, 도움받는 걸 잘 못해버릇했다. 그 흔한 ‘선배 밥사주세요’를 내 입밖으로 뱉어본 적이 없다. 그냥 누군가 다가와서 밥을 사주길 그렇게 기다리고, 나는 언제 커피를 사야하는 지 전전긍긍하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언니와는 달랐다. 우리가 가진 정보나 겪은 세월이 불균형해서 언니에게는 받을 만한 일이 많았다. 잠겨 있는 문곡 7을 부채로 여는 법이라든가, 논술을 쓰는 방법이라든가, 글감을 모으는 출처라든가. 지금 돌아보면 핏덩이 같은 나랑 스터디를 하면서 언니가 뭘 얻었겠나 싶다. 우리는 매주 서로의 글을 피드백해줬고, 이번주에 있었던 이슈나 글감을 나눴다. 아주 피곤했던 날도 언니랑 스터디를 하고 나면 뭔가 이룬 듯한 착각에 빠졌다. 솔직히 우리가 나누는 인사이트가 꽤 괜찮다고 생각해서 취했던 것도 같다. 이제와 말하지만 우리 스터디는 꽤 고퀄이었다. Cj에서 이번에 나온 기출 키워드를 적중했달까(뿌듯). 물론 서탈해서 치러가진 못했지만.

내 책상에는 언니 흔적이 많다. 마지막 날 언니랑 찍은 폴라로이드도 붙여놓고, 내게 줬던 간식도 안 먹고 있다.(가능하다면 잼으로 만들어서 평생 간직하고 싶다) 언니가 써준 편지랑 생일선물로 줬던 유리 빨대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꽂아뒀다. 생일선물로 유리 빨대를 주다니. 누가 보면 특이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취향저격이었다. 언시반에서 빨대를 쓸 일이 있으면 늘 맘 한켠이 불편했다. 이런 사소한 코드가 어쩌면 우리 사이 공간을 편하게 만들었을지 모르겠다. 언니가 사준 볼펜이랑 같이 산 공책도 눈에 보이는 곳에 두고, ‘빨리 따라가야지!’하는 마음으로 공부하고 있다. 언니는 남들에게 참 잘 맞춰주는 사람이었다. 언니의 그런 모습에서 내가 많이 겹쳐보였다. 그래서 자주 언니가 안쓰러웠고, 가능하다면 ‘언니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내가 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남한테 피해주지 않으려고 하지만 남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 우린 종종 그래서 고갈되는 우리 자신을 탓하기도 했지만, 사실 난 이런 부대낌을 가진 사람이라 언니가 더 좋았다.

보은언니가 좋은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아마 이곳을 가득 매울 수 있을 것 같다. 언니는 지금도 자기 자리에서 고군분투중이다. 난 간절히 바란다. 언니가 숙면을 취하기를. 불안해도, 실수해도, 아파도 괜찮다고 서로에게 말할 수 있기를. 언젠가 언니가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생겨도, 언니니까 괜찮다고 말할 만큼 언니는 내게 절대 영역이다. 매번 내가 이런 표현을 하는 게 그를 부담스럽게 하지 않을까 걱정되면서도 용기내서 또 끄적여본다. 그럼 그렇게 사람이 좋지 말던가. 사실 떠났다는 표현을 써서 이 글을 보고 언니가 마음 불편해할까봐 걱정되기도 한다.(소심) 하지만 지금 역대급 안정적인 언시반 생활을 보내고 있어서 걱정말라며. 오늘 언니에게는 내가 기분이 환기될 때마다 찍은 나무 사진을 메일로 보낼거다. 일에 지쳐서 햇볕도 못보고 살진 않을지. 혹시 사람들한테 시달리는 건 아닌지. 바쁘고 힘든 일은 언니를 휙휙 지나가고, 행운이나 행복 같은 건 언니를 꽉 쥐었으면.  



토익 공부를 하면 세상 모든 게 재밌어져

토익 공부의 장점은 언시 공부를 재밌게 만드다는 거다. 논제정리도 재밌게 만드는 마성의 토익! 내가 토익 학원 캐치프레이즈를 만든다면 ‘세상 다른 모든 일을 재밌어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할 거다. 지난주는 ‘20대는 왜 보수화됐는가’를 논제로 논술을 썼다. 나의 논지는 20대를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 잣대로 바라볼 게 아니라는 것. 그들은 경쟁에 길들여진 세대고, 무임승차에 반대하면서 대부분의 아젠다를 결정한다는 분석이다. 20대가 무임승차에 발작하는 건 사회적으로 기회가 적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글감정리를 어떻게 미루지 않을 수 있을까
글감 정리는 늘 뒤로 밀린다. 이런 건 정말 스터디를 해야 하는데, 마땅히 같이할 사람이 없다. 바쁘다는 핑계로 한없이 미루고 있다. 요즘 뭔가를 하지 않는 거로 정체성을 드러낸다던데. 혹시 이게 나의 정체성은 아닐까. 브런치에 그 주에 제일 인상깊었던 글감을 남겨보는 것도 좋을 듯. 조만간 작문스터디를 시작해야 겠다. 콘텐츠가 없으면 글이 나오지 않아서 글 미루기를 피하지만. 사실 내가 그렇게 대단한 대가가 아니라서 지금 읽은 걸 겨우 소화해서 글에 녹이려면 그때그때 쓰는 게 필요한 것 같다. 그 당시에 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젤 먼저하는 편인데, 빨리 작문이 1순위가 될 수 있는 황금기가 오면 좋겠다. 토익이며 한국어며 빨리 끝내버리자~




무엇이 우리를 성형하게 만들었나

무엇이 우리를 성형하게 만들었나. 묻고 싶다. 정말! 정말! 고등학교 졸업 때 반에서 반 이상이 쌍수를 했고, 대학 졸업 땐 파이가 더 커졌다. 그들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도 성형할까 많이 고민했다. 그때 했던 내적 고민은 내 영혼을 갉아먹었다. 거울을 봤을 때 내 모습이 정말 싫어서 조금이라도 고치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에 병원을 갔었다. 성형외과에 가기 전까지 여자들이 겪게되는 자기혐오 플로우가 넘 가슴이 아프다. 이런 담론을 말하는 것조차 타자화한다고 생각할까봐 겁난다. 그래도 나는 우리가 성형을 생각하게끔 하는 이 사회가 넘넘 기형적이라고 생각한다. 내 남자 동기들은 입학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안경을 끼고 다니는데 말이지.




취약성은 용감한 정도를 재는 가장 좋은 방법

넷플릭스에서 브레네 브라운의 테드 강연을 들었다. 영어 강연이니까 토익공부하는 거야~ 정신승리하면서 봤다. 내가 취약한 부분을 인정하면 오히려 용기가 생긴다는 것. 상처받는 게 무섭지만 그래도 사랑한다고 말하겠어. 시험치는 게 떨리지만 그래도 담담하게 치뤄내보겠어. 같은 마음들. 이 강연을 보고 나서 나의 취약함에 대해서 조금씩 드러내는 글을 한 꼭지씩 써보고 싶다. 경기장 안에 들어가서 뛰라는 말이 가장 좋았다. 싼 좌석에서 던지는 상처되는 말을 주워담지 말라는 것도. 사실 난 늘 경기장 밖에 머물고 싶어한다. 혹시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 안 좋은 게 겁나서 최선을 다 하지 않는 척하느라 에너지를 소모한다.(적고 보니 웃기다) 강철처럼 강해져서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늘 다짐한다. 브레네는 안타깝지만 그런 일은 잃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한없이 취약하다는 걸 인정하고, 내 인생에 떨어지는 부수러기를 잡아모아야지.



사실 취약성은 용감한 정도를 재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에요.(유튜브 강연 링크)


‘당신이 경기장에 있는 게 아니라면


용감하게 행동했다고 가끔 혼나는 정도라면


나는 내가 한 일에 당신이 뭐라고 하든 관심없다’



오늘날 세상에 싼 좌석에 앉은 사람이 수백만이에요. 그 경기장에 발 한번 들이지 않을 사람들이죠. 절대로 나서지는 않지만 하루내내 거기에 앉아서 우리한테 비판이나 판단 혐오스런 말들을 마구 던지죠. 우리는 이런 걸 주워서 낱낱이 뜯어보고 마음에 묻어두는 버릇을 버려야 해요.

그냥 바닥에 놔두세요.

싼 좌석에서 던지는 상처되는 말을 줍지 말고, 자기 근처에 갖고 오지도 마세요.

그냥 땅에 내버려 두세요.

짓밝거나 찰 필요도 없어요.

그냥 밟고 갈 길 가요.

자기 삶을 용감하게 안 사는 그런 사람들이 주는 의견은 들을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을 뭉개기만 하죠.




내일의 작은 꿈: 넷플보면서 밥먹기
작은 소망이 있다면 내일부턴 저녁에 넷플릭스나 콘텐츠를 보면서 식사를 혼자하고 싶다. Pd준비생이니까 콘텐츠 모니터링도 해야 하는데, 사실상 모니터링을 할 시간이 없다. 언시반 생활의 만족도는 밥을 어떻게 먹냐로 결정된다. 조금만 불편한 사람들이랑 밥을 먹으면 체하고 먹은 걸 다 토해버린다.  문보영 시인은 일상생활을 잘 하는 일상인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난 후자다. 한끼한끼를 먹어내는 게 벅차다. 지금 언시반 생활이 퍽 편해진 건 밥먹는 사람들이 편해져서다.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하면 마음이 충만해지고 용기를 얻기도 하지만. 난 대게 모든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감정노동을 하고, 꽤 많은 에너지가 든다. 특히 불편한 말을 들으면 공부 시간 내내 그 말을 소화하느라 힘들다. 혼자 먹기까지 꽤 많은 거절을 요해서 이 시간을 내게 선물하려면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각잡는 건 각도기 쓸때나 하는 말이지
틈과 틈 사이에 잠시 마음을 내는 건 참 쉬운데, ‘마음을 먹기’란 정말 어렵다. 뭐든 준비가 됐을 때 시작해야지! 하는 마음이 내 행동을 늘 더디게 만든다. 늘 각을 잡고 뭔가를 시작하는 편이고 이게 별로 나에게 좋지 않은 걸 알아서 약간 이거에 대한 열등감이 있다. (사실 브런치도 원래 어제 업로드 하려고 했는데, 좀 더 완성된 글로 돌아와야지! 하다가 지금 왔다) 이런 내 모습에 열받아서 괜히 브런치하는 친구한테 심술을 부렸다. 이런 나라서 미안하고 사랑한다.

나중에 돌아보면 이 언시반 생활 기간을 ‘동굴같았다’는 말 정도로 남길 것 같다. 한 마디로 단정하기엔 엄청 좋았던 순간도, 글로 남기고 싶지 않게 고통스런 순간도 있었다. 고통스런 순간엔 글로 풀어내서 그래도 일기장 모퉁이에라도 남아있는데. 사소했던 하루 사이에 틈은 다 사라지는 것 같다. 이제 각잡지 말고 틈틈이 내 상념들을 기록해보겠어. 조만간 [화장 말고 요가]라는 콘텐츠로 돌아옵니다. 커밍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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