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보고
푸르던을 들으면 처음 사귀었던 애인이 생각난다. 이 노래를 듣자마자 이건 우리 노래라고 생각했다. ‘너는 조용히 내려 나의 가무른 곳에 고이고, 나는 한참을 서서 가만히 머금은 채로 그대로, 나의 여름 가장 푸르던 그날’ 스무 살 나는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누구를 좋아한다는 마음에 기대어 살았다. 그 여름 만난 애인은 그런 내 외로움을 충족시켜줬다.
이렇게 보면 대단히 아련한 연애를 한 것 같지만, 그래 뭐 아름다웠던 적도 있었다. 근데 요즘 하는 드라마 <화양연화>처럼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련하고, 애틋하고 이런 건 없다. 그냥 한 때 좋은 추억이다. 거기에 물론 나쁜 추억도 당연히 같이 서려있다. 그런데도 푸르던을 들으면 습관처럼 그 사람을 떠올리고, 그때를 떠올리게 된다. 음악이 주는 힘이 이렇게 대단하다. 살면서 단 하나의 음악만 들을 수 밖에 없다면 어떨까? 거기다가 멜로디가 애틋하게 사랑했던 여인과 엮여있는 거라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 나오는 두 여인은 침묵의 세계에서 음악으로 엮인다. 중세 시대에는 음악이 없었다. 특히 귀족 집안이었던 엘로이즈는 음악을 들을 일이 없었다. 그런 엘로이즈에게 마리안은 비발디 <사계>를 쳐준다. 평생 아무것도 듣지 않았던 사람이 음악에 매료되는 것처럼, 둘은 그런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내 사랑과 달리 영원하고 애틋하다. 엘로이즈는 어쩔 수 없이 피렌체 귀족과 결혼하게 된다. 그림에 흔적을 남기면서 서로를 그리워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엘로이즈는 <사계> 연주를 들으러 공연장에 간다. 그리고 그녀는 서럽게 운다.
아마도 영화에 나온 건 여름,,가을,, 쯤 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