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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들렌 Dec 20. 2020

햇볕을 봐야 하는데 다리를 다쳤다

5편 2020-06-15

나는 치료에도 워낙 범생이 스타일이라 선생님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듣는다. 귀담아 들은 얘기들은 대게 실천한다. 선생님이 내게 내주신 숙제는 아침 저녁에 호흡하기, 30분이상 따뜻한 햇살 속에서 걷기 등이 있었다. 


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매일같이 수영강에 가서 걸었다. 어떤 날은 자전거도 탔다. 그리고 윤슬도 관찰했다. 그러다 보면 병이 났는 것 같았다. 


왠걸. 그러다가 다리를 다쳤다. 내 발 힘줄은 양쪽 다 약하다. 아킬레스 건도 짧다. 발이 다치는 일이 너무 지겹다. 내 몸속에 절망이 있다면 그건 발목 힘줄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선생님께 이런 저런 속상한 마음을 털어놨다. 어쩌면 나는 몸이 아픈 상태를 마음이 편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는 것, 몸이 다쳐서 나를 너무 절망했고, 절망에 빠지지 않으려고 에어팟 프로를 산 것, 잠을 중간에 깨는 것, 운동을 못해서 또 뭔가를 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다는 것. 

    

선생님은 그 모든 일에 그럴 수 있다고 답하셨다. 지금 잘하고 있다고. 약의 효과는 아마도 적을 거라고. 내가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생각하려고 해서 나은 것 같다고 해주셨다. 김보통 책을 읽은 영향이 큰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불행하지만은 않을 것. 나를 보채지 않을 것. 


쉽지 않았지만 ‘너 좀 쉬어도 돼’, ‘너 그렇게 아무 것도 안한다고 가치 없는 거 아니야’, ‘피하고 싶으면 피해도 돼’라고 말해줬다. 


자꾸 나한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서 김보통 책을 아꼈다가 계속 읽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 김보통이나 김소민 기자 책의 공통점이랄까.      


아무래도 세상에 통용되는 수많은 신화와 이야기는 내게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어떤 때는 죽도록 애써서 그 신화에 나를 밀어 넣고 싶었는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너무 보통이라서 그렇게 비범한 일은 못 한다.      


상담 말미에 나는 선생님은 "이해해줘요. 그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어서 그랬구나. 그래서 참 안쓰럽구나." 이렇게 말해주라고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해해주고 넘어가는 것. 정말 나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다.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선생님이 하는 말은 뭐든 실천만 하면 효력이 있을 것 같아서 왠지 희망이 생긴다.      


나는 또 선생님께 선생님 저 원래 하루에 30분 햇볕 쐐면서 걸어야 하잖아요. 근데 이제 못 걷잖아요. 뭘 해야 하죠?라고 전전긍긍하면서 물었다. 선생님은 “세희 씨, 뭐 안 해도 돼요. 가만히 있는 세희 씨를 허용해주세요. 지금은 그런 시간인 것 같아요. 아픈 게 안심이 되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어요. 세희 씨는 알았으니까 발전적인 거에요.”라고 말했다.      


갈증에 시달리다가 물을 마시듯 그 대답을 삼켰다. ‘맞아. 괜찮아. 운동하는 건 다리 낫고 나서 생각하면 되지.’ 나한테 왜 이토록 당연한 말을 내뱉기가 어려운 건지.      


선생님은 내 예민함을 분석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저 다정하게, 친절하게 나를 대해주고 살펴주라고. 그런 마음이 드는 구나. 이해해주라고. 


에어팟 프로를 산 건 나에게 정말 행운이다.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음악을 들으면 혼돈 속에 평온을 찾는 것 같아서 좋다. 다소간 내게 일어나는 작은 스트레스는 소음에서 오는 경우가 많았고, 노이즈 캔슬링은 그 문제를 가볍게 해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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