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오늘
이사를 앞두고 있다.
정리를 하기 위해 옷들을 모두 꺼냈다. 옷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돌처럼 오래 박혀 있던 옷까지 전부 꺼내어 바닥에 내려놓았더니, 바닥이 옷으로 가득해져 버렸다. 흐드러진 옷 사이로 자잘한 기억이 꿈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옷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어려 있다. 생각보다 옷이 비싸서 망설이던 나에게,
“그냥 사, 예뻐.” 하던 나긋한 목소리.
나는 그 선명한 목소리 때문에 목 부근이 잔뜩 늘어난 이 초록색 옷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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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옷들은 여전히 나를 그 안에 집어넣어 맞추려고 한다. ‘회사원이라면 셔츠를 입어야지.’ ‘아이 엄마라면 무릎 위로 올라가는 바지는 안 돼.’ ‘요새 유행을 너무 모르면 안 되니까.’ 나는 원래의 나를 부정하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되어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는 모두 무의미한 것들이었다. 나는 늘 나로 되돌아 오고는 했으니까.
오로지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샀던 옷 하나도 보인다. 당시의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이 정도면 꽤 잘 차려입은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그 잘 차려입었던 옷을 벗어 던졌을 때, 나에게 남아있던 것은 한 줌의 초라함 뿐이었다. 우월감과 열등감은 같은 종류의 것이라는 걸 그때의 나는 몰랐다.
불쾌한 기억이 덕지덕지 엉겨 붙어 있는 옷도 하나 있다. 이런 옷은 내 부끄러운 감정과 함께 갈기갈기 찢어서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게끔 만들고 싶다. 하지만 나는 차마 그러지 못하고, 지울 수 없는 그 기억 덩어리만 옷에서 겨우 떼어낸다. 그리고 남은 옷을 정갈하게 접어서 박스 안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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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묵은 옷 사이를 이리저리 헤집으며 나는 계속 과거의 시간들에 머무른다.
체크무늬의 초록색 원피스는 친구의 결혼식에서 축사를 할 때 입었던 것이다. 두 번의 결혼식에 더 참석했던 이 긴 원피스는 화려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곰팡이와 한 몸이 되어버렸다. 찬란하게 빛나던 그 부부는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누가 봐도 알 만한 브랜드 로고가 붙어 있는 옷 하나를 집어 들면서는 ‘내가 도대체 이런 옷을 언제 샀더라’ 하고 지나간 시간을 뒤적여본다. 이 옷 역시 열등감의 결과물인지, 아니면 그저 ‘주간 베스트 10’ 같은 귀찮음이었는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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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옷은 나를 구성했고, 나와 함께 오늘을 보냈다. 그렇게 나의 수많은 오늘들이 허물이 되어 옷으로 남았다.
누군가는 '옷이 날개'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나는 날개가 달린 허황된 사람보다는, 날개가 없는 말끔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나 내 눈앞에는 날개가 되고 싶었던 수많은 옷들이 힘없이 바닥을 유영하고 있다. 그 바닥에 가라앉아 자꾸만 기억의 늪으로 빠지는 나를 이제는 그만 건져 올릴 때가 되었다.
이사일까지는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