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습기

다섯 번째 오늘

by Sayoo

나의 오늘은 엄마로 가득하다.


방금 전까지 나는 엄마와 함께 있었고, 지금 내 핸드폰 화면 속에는 엄마의 조심스러운 문자가 띄워져 있기 때문이다.


'잘 들어갔니?'


엄마를 생각할 때면 마음이 축축해진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별다른 이유 없이 엄마가 진한 습기를 머금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엄마는 매사에 냉정한 편이지만 눈물도 많다. 감당이 안 되는 어떠한 일 때문에 엄마가 눈물을 흘리면, 나는 몸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물이 차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그저 엄마가 하루하루를 잘 살아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이렇게 답장을 보낸다.


'늘 행복하자, 엄마.'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에게 행복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가벼운 부스러기 같다. 그래서 습기가 가득한 엄마에게 행복이 가 닿으면 금세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


행복은 평범함 속에 있다는 흔한 믿음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 나의 엄마는 매우 평범하므로, 그래서 누구보다도 쉽게 행복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엄마는 몇 년 전에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아직까지도 매우 위태롭고 불안하다. 내가 엄마에게 습한 기운을 느끼는 데에 이유가 없듯이, 엄마에게 우울증이 발병한 데에도 딱히 정확한 이유가 없다.


엄마가 우울증으로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들은 나의 지인은 언젠가 내게 이렇게 반응한 적이 있다.


“아니, 왜?”


사람들의 감정과 마음은 그들이 내뱉는 단어 바깥으로 쉽사리 흘러나온다. 입 밖으로 스며 나온 단 몇 마디를 통해서 나는 그가 엄마의 우울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네 엄마는 평범한 사람이잖아.

그런데 왜 우울증이 왔어?’


-


평범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인식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18세기 프랑스 화가 샤르댕의 그림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을 차지하는 경우는 예술이나 문학에서 빈번하게 있었던 일이다. 남들과 다른 점이 없는 보통의 사람들이야말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대상이었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서 우리는 평범함이 곧 행복과 연결된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평범함이 행복과 반드시 이어지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만약 이 세상의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다 같이 행복하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분명 좀 더 나았을 것이다.


도시 속의 평범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메마른 도시처럼 색이 바래져 있는 사람들이다. 어두운 얼굴과 무채색의 옷, 무표정한 표정과 서로를 경계하는 몸짓들. 이들은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느라 어느 순간 서로 비슷하게 되어버렸고, 그 덕분에 서로 잘 섞이게 되었다. 길거리에서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마트나 카페에서도 딱히 튀는 사람이 없다.


색이 바랜 도시 사람들 사이에 엄마가 끼어있으면, 엄마 역시 그들처럼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엄마를 찾아낼 것이다.


엄마에게 축축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아차릴 것이다.


그런 엄마를 꼭 껴안아서 물을 짜내고,

반듯하게 펴서 말릴 것이다.


그다음에는 어떻게든,

행복의 작은 부스러기들을 엄마에게 붙여볼 것이다.


엄마의 습기가 나에게로 와서 조금은 건조해지도록, 그래서 계속 살아갈 만하도록 애써볼 것이다.


-


글을 쓰는 도중에 엄마에게 다시 문자가 왔다.


‘엄마는 행복해. 너도 행복하자.’


어쩌면 엄마 역시 나의 진한 습기를 말리려고

하루하루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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