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극우화 현상이 의미하는 것

반페미니즘에 대한 소고

by 안해성

한국에서의 20대 남성 내지는 20대의 극우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12·3 계엄 이후 발생한 서부지법 폭동 이후의 극우화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하였으나 우리에겐 이미 이대남 현상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알려져 있다.


20대 남성의 보수화와 극우화는 여러 여론조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내용이다. 극우 정도를 본격적으로 조사한 지난 한겨레-정당학회 조사에서도 의미 있는 격차로 더 극우적이었다.적어도 이들이 ‘극우화’되었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단순한 ‘보수화’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과 소수자 권리에 대한 부정, 강한 권위주의적 질서 선호라는 점에서 이 현상을 ‘극우화’로 규정할 근거는 충분해 보인다.


이 과정속에서 이들이 가지는 반페미니즘적 성향이 이들이 극우화의 시작점이라고 주장하는 담론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대남 현상의 주류 문화인 반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의 반대하는 것에 비해 빈약한 이론적 기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론적 기반 없는 사상’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지적을 받는다.


반페미니즘은 그 자체로 완결된 이념이라기보다는, 더 급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치로 이동하기 쉬운 경유지에 가깝다. 이대남 현상을 단순히 ‘젠더 혐오’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혐오적 양상을 띄는 동시에 여러 방면으로 문제화되어 왔다.


그들이 가지는 반페미니즘적 태도를 단순한 감정의 표출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그 표출이 어떤 방향성과 내용을 갖는지에 대한 질문을 의도적으로 유보한다. 그러나 표출은 결코 무작위적이지 않다. 분노가 표출되는 방식, 선택되는 적대 대상, 그리고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언어는 이미 특정한 세계관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그 기반에 자리한 이념적 토대를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20대 남성 집단의 반페미니즘은 파시즘적 이념과 여러 핵심 요소를 공유한다.


첫째, 사회적 불안과 개인적 실패의 원인을 구조가 아닌 특정 집단에 전가하는 사고방식이다. 이는 파시즘이 경제적·사회적 위기를 ‘타자’의 문제로 환원해온 고전적 전략과 닮아 있다. 페미니즘은 이 과정에서 추상적 사상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공격 가능한 적으로 재현된다.


둘째, 평등과 권리의 확대를 질서의 붕괴로 인식하는 반민주적 감수성이다. 반페미니즘 담론에서 반복되는 “특혜”, “과도한 권리”, “역차별”이라는 언어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권리의 보편성을 부정하고, 위계적 질서의 복원을 요구하는 정서로 이어진다. 이는 강한 국가, 강한 규율, 명확한 서열을 선호하는 파시즘적 질서관과 맞닿아 있다.


셋째, 피해자 정체성의 정치화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체제의 수혜자가 아니라 피해자로 위치시키며, 그 피해의 원인을 ‘약자 보호’나 ‘정치적 올바름’에서 찾는다. 이러한 자기 인식은 권위주의적 해결책과 결합될 때, 민주적 절차보다 강력한 통제와 배제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쉽게 전환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반페미니즘은 단순한 표출 방식이 아니라, 이미 내재된 파시즘적 감수성이 가장 먼저 가시화되는 출구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반페미니즘은 이념의 공백 상태에서 우연히 선택된 언어가 아니라, 권위주의·배제·위계에 대한 선호가 가장 손쉽게 발현되는 정치적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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