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그리고 여성차별의 이해

by 안해성

조남주 작가의『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아는가. 『82년생 김지영』이 소설의 분야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에 조금의 의아함이 있다. 이 책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통계적 자료를 제시하며 우리 사회의 다른 지영이들에게 이야기한다. 엄밀히 말하면 『82년생 김지영』은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며 누군가의 삶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물론, 문학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인문학 분야로 정의하여야 하지 않나 싶다. 그러나,『82년생 김지영』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이 책이 궁극적으로 여성들에게 이야기한다는 지점이 분명한 것에서였다.


"여기 내가 있어."


『82년생 김지영』은 평범한 82년생 여성들의 삶을 소설의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책이 한국에서 꽤나 비판을 받았다. 외국에는 17개국에 수출되었는데, 왜 한국에서 비판을 받았을까? 왜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여자 아이돌이 사과를 해야 했으며 이 책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 『82년생 김지영』가 왜 별점테러를 받아야 했을까. 새삼스레 이야기하지만, 여성 작가들의 문학을 읽다 보면 페미니즘이 그들의 삶의 자세가 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더욱 담대해지고 솔직해지며 직접적으로 여성에 대한 억압에 도전한다. 이를테면 최승자의 『이 時代의 사랑』, 이소호의 『캣콜링』,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같은 책들 말이다.


이 책과 영화가 비판을 받은 내용의 주된 요지는 '피해의식'에 근거했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작가는 이러한 비판을 예상이나 한 듯 책 속에 통계자료를 넣어 놓았고 실제로 성차별을 분석할 때 많이 등장하는 자료들을 언급해놓기도 했다. 그리고 작가 본인의 전공 자체가 사회학인 만큼 꽤나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이야기하는 소설이기도 했다. 물론, 독자로서 이에 공감하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온라인상에서 이렇게까지 비난받을 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강한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왜 『82년생 김지영』을 비판하였는가. 사실 이러한 반응들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의 가치를 입증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그토록 과하게 『82년생 김지영』을 비판한 이유는 결국에 그들이 없던 비판을 쏟아낸 것이 아니라, 숨겨두었던 혐오를 꺼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선량한 남성들로 보이지만, 결론적으로 그들은 구조적 성차별이 드러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이 책을 비판하는 이유는 '무지'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무지'의 이유가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이유에서 기인한다면 이것은 권력의 문제가 된다. 이 권력으로 '무지'를 유지한다면 이것은 혐오주의와 동질시 해야 한다.




이 장에서는 여성들의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모두가 익히 알고 있겠지만 한국 여성들의 평등한 노동을 이야기하는 유리천장지수가 꾸준히 꼴찌를 하고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매년 유리천장지수를 발표한다. 이 지표에서 한국은 16년 이후로 매년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일하는 여성의 노동 참여율, 남녀 고등교육·소득 격차, 여성의 노동 참여율, 고위직 여성 비율, 육아 비용, 남녀 육아휴직 현황 등의 지표를 반영해 유리천장지수를 산정한다. 그러므로, OECD 기준으로 여성의 삶이 녹록지 않은 것이다. 여러 가지 지표를 보면서 나름의 설명을 할 텐데,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차별로 정의하려고 한다.



여성 노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 노동시장의 역사를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 외환위기 이후에 여성의 69%가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비정규직으로 시작하게 되었고, 이들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는 시간제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노동시장에서 남·여를 생각해 볼 때, 구조적 차별에 의해 노동시장의 핵심인력이 남자이고 여성들이 잉여인력처럼 사용되어 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노동의 관점에서 여성들은 위기 때마다 조용히 학살되어 왔다고 보는 것이 옳아 보인다.


이를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1963년에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37%에 불가하지만, 2004년에 50%에 이르게 된다. 그러는 동안에 여성이 남성보다 대학에 더 많이 가게 된 것이 약 15년쯤 되었다. 그러면서 여성의 노동에 대한 욕구가 늘어나게 되었다. 다음 그림은 남성 대비 여성의 임금 비율이다. 여성이 58.6%에 불과했지만, 여성의 65% 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지표로만 보면, 여성-남성 간에 임금차이가 줄어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과 남성의 임금 차이는 어디에서 벌어질까?





다음 자료는 남성과 여성의 정규직 비정규직 비중을 의미한다.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정규직을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는 업종 및 직종의 주요 특징으로 보인다. 이는 1980년대 후반부터 크게 증가하기 시작한 임시․일용직, 시간제 노동자 비중이 외환위기 이후 한국노동시장에서 다수를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980 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40% 이상을 기록하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은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기업의 노동유연성 강화정책 도입 이후 전체 노동자의 50% 이상을 넘어서면서 노동시장을 크게 변화시켰고, 이러한 경향은 여성, 노인, 그리고 저학력 수준에 있는 사람을 비롯하여 한국사회의 소외계층과 특정 산업부문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고용불안에 노출되어 있고, 동일 혹은 비슷한 노동에 종사하면서도 노동조건과 임금에서 차이가 크다는 점에서 남성과 여성의 임금 차이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자료와 같이 여성 노동 정책에서 핵심적으로 지적되어 오던 경력 단절과 같은 부분들 또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자료와 같이 그래프가 M자 곡선을 그리게 되는데 이는 여성의 임·출·육으로 인한 경력단절을 의미한다. 경력 단절은 승진의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고 경력단절의 재진입이 어려워지거나 저임금 노동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임금격차의 이유라고 볼 수 있다. M자의 깊이가 점점 얇아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여성이 임·출·육을 포기하고 있는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저출생 현상과 연관이 있고 이는 여성들이 사회적 지위를 위해 출산을 포기하는 것으로 보이며 낮아지는 출산율과는 다르게 남-여의 임금 격차가 줄어드는 지표를 설명하는 기초적인 단초가 될 것이다.




앞선 이야기들 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비정규직-정규직 사이의 문제와 경력 단절에 대한 부분을 차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김난주 교수는 여성이기 때문에 임금의 차이가 생기는 부분이 58%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러니까 이 연구결과의 핵심은 남성과 여성에 있어 설명되지 않는 여성 손실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김창환 교수, 이주희 교수 등등이 이야기하는 노동시장에서의 남성-여성의 임금 격차 중 설명되기 어려운 격차라는 점을 지적해 왔는데, 김창환 교수의 경력단절 이전 여성은 차별받지 않는가?: 대졸 20대 청년층의 졸업 직후 성별 소득격차 분석을 참고해 보면,


김창환 교수(2019)에 따르면, 2008~2015년까지의 <대졸자직업이동경로조사>를 이용해서 결혼이나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이 발생하기 이전에 동일 경력을 가진 20대 남녀의 임금을 비교했는데, 거주지역, 출생지역, 부모학력, 부모소득을 통제했을 때, 19.8% 더 낮았고, 졸업대학과 전공을 비롯해서 학점, 어학연수, 자격증, 인턴 경험 등 여러 변수들을 통제했을 때 17.4%로 2.4% 줄어들었다. 이는 전공에 따라서 취업하는 경우가 제한적인 한국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아야 할 지점은 통제한 변수들을 다 빼고 연령, 그러니까 남성이 군대에 가 있는 시간을 통제하면, 9.7%가 된다. 이 부분에 대하여 연령의 선호 효과인가 아닌가를 분석하기 위해서 같은 나이일 때, 임금격차를 분석해 봤더니 연령을 매개로 하는 성차별에 가까운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 이 연구에서는 여성들의 공적 부문 그러니까 공무원의 경우에는 여성의 소득 불이익이 2.6%로 미미한 수준임을 밝히면서 여성들이 사적 영역, 기업의 취업이 불리함을 인지하고 공공의 부문으로 진출하는 일종의 긍정적 편향 선택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회가 여성을 차별하는 변수는 동일노동에 대해 동일임금을 주지 않는 방식이 아니라 동일 노동을 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진단하면서 엘리트 대학에 나온 사람일수록 차별별의 가능성이 더 늘어난다고 밝혔다.

사실 여성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수차례 연구들을 통해서 증명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반박하는 연구는 전무하다. 그러니까, 사실 학문적으로는 여성차별은 엄연히 존재하는 영역이고, 이를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있을 뿐이지 어디까지나 증명하는 사실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 경력단절 문제를 유심히 보다 보면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여성에게 악영향을 미쳐 정규직과 비슷한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임금차이가 발생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것이 이야기하는 것은 기업들이 노동력을 싸게 얻으려고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알맞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는 그 자체가 구조적 차별에서 기인하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 자체가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생겨도 가정 돌봄이나 양육의 책임은 여성에게만 지워지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양육의 주체를 규정짓는 차별일 뿐만 아니라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폐해라고 봐야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노동의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


구조적 차별은 가해자로 보이는 사람이 없으면서 사회적 억압이 시작되기 때문에 복잡해지고 어려워진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많이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여성차별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미국에서 흑인차별이 없어졌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똑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국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투쟁을 시작한 것이 흑인 인권운동의 역사보다 짧기 때문에, 여성들은 여전히 차별을 받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성차별과 관련해서 인터넷에서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는 것을 보고는 한다. 그런데, 그때마다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차별이 없다고 비난하는 그들이 잘 살지 못하는 것은 여성들 때문이 아니라는 점과 그들은 여전히 차별의 수혜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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