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서 일한 첫 주. 집에 돌아가는 길이 이상스레 깔끔하다(?)고 느꼈다. 과거 직장생활을 하고 귀가할 때 느끼던 불쾌한 침전물이 거의 남지 않았다.
원인이 무엇일까. 그저 풀타임 보다 적은 근로시간(5시간)때문일까. 혹은 알바생에 준하는 지위에 있다는 가벼운 책임감? 선한 원장님을 만난 덕분? 아마 모두 맞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생각한 주요 원인은 아이들의 '거품없는 리액션'이었다.
과거 퇴근길이 찝찝했던 이유는 그날 하루를 복기하는 과정이 꽤나 높은 에너지를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복기하는 것은 십중팔구 그날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말'들이다. 대부분 나의 행동, 나의 말에 대한 리액션일 때가 많다.
퇴근길엔 본격적으로 리액션 분류작업을 실시한다. 긍정(+)과 부정(-)으로 1차 분류를 끝내고, 모호한 리액션이 남는다. 진심과 농담의 경계에 선 문장들. 문자 그대로 해석해선 낭패볼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한다.
특히 어른들은 '쿠션멘트'(ex. 코로나 끝나고 밥한 번 먹어요)에 능하다. 비즈니스로 얽힌 퍽퍽한 관계에 윤활유를 뿌려주지만, 때론 본래 문장의 뜻과는 다른 뜻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게다가 성격, 상황, 친분에 따라 가변적이라 조심히 해석해야 한다.
함께 일했던 직장동료는 대부분 3040세대 였기에, 쿠션멘트는 미팅의 기본값이었다. 나 역시 자유롭지 않았다. '예의상 하는 말'이 늘어갔고, 반대로 '예의상 해주는 말'에 적당히 쿨해졌다.
그래서일까. 화려한 맛집에서 웃음꽃피는 대화를 해도 '공허함'이 느껴지는 날이 많았다. 아마 퇴근길 느꼈던 '찝찝함'의 주요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아이들은 '쿠션멘트'를 하지않는다.
어른들처럼 사회적 가면을 쓰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거칠어보여도, 어떤 조미료도 가미되지 않은 진실된 리액션을 보여준다.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다. 첫 출근날, 대부분 아이들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한 마디만 건냈다. 생각보다 무뚝뚝한 태도에 '나한테 관심이 없나'싶었다.
돌이켜보니 당황스러웠던 이유는 "식사하셨어요?" "오늘 날씨가 좀 춥죠" 등과 같은 의례적 안부인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쿠션멘트에 피로해하면서도, 쿠션멘트로 물꼬를 트는 어른들의 소통방식에 나 역시 익숙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문방구에서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라며 준 마시멜로
정공법을 택하기로 했다. 아이들의 관심사를 디테일하게 파악해 친해지는 식으로 말이다. 이를테면 기타학원을 다니는 아이에게는 "요즘 무슨 곡을 연습하느냐" "굳은 살때문에 아프지 않느냐"고 묻고, 쇼미더머니를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최애 프로듀서가 누구냐" "지난 쇼미에서 누구 응원했느냐"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서로에 대한 정보가 쌓이다보니, 대화는 점점 풍부해졌으며, 쿠션멘트는 필요하지 않았다. 물론 시간이 소요된 것은 사실이다. 취향과 성격 등을 알아갈 물리적 시간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내 노력에 조용히 화답해주었다. 우리가 나눈 대화의 온도는 관계의 온도와 거의 일치했다. 관심과 애정을 쏟은 만큼, 대화의 온도도 올라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친분을 정확히 반영한 대화는, 찝찝함을 거의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