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학원에서 요즘 초딩을 만나다

'요즘 애들'과의 첫만남을 떠올리며 - prologue

by 번애프터리딩

나는 경기도 모처의 아파트 단지내 위치한 작은 영어학원의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다.

주로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집에서 해온 숙제를 채점하고, 오답을 체크해 해설해주는 일이다. 중학생들의 경우 기출문제나 예상문제를 활용해 내신을 준비해주기도 한다.


고백컨데 교육에 뜻이 있어 시작한 일은 아니다. 당시 입시 실패로 내면의 심연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높은 이상에 미치지 못하는 스스로를 깎아내리기 바쁜 시절이었다.

스스로의 약점을 잘 알기에, 내 지능을 총동원해 내게 섬세하고 아픈 말을 골라 급소를 찌르고 상처를 계속 헤집었다. 상처가 아물리 없었다.


자꾸 내면으로 향하던 부정적 에너지의 방향을 반대로 바꿔야 했다. 경력직이든, 알바든, 당장 일이 필요했다. 괴로운 내게 몰두할 '무언가'가 절실했다. 다행히 입시 준비하며 마련해둔 토익점수를 활용해 여러 영어학원에 원서를 냈다. 학원 보조교사는 구할 수 있던 알바 중 가장 나은 조건이었다.


설 연휴 직전 원장님과 면접을 봤다. 생각보다 영세하고 아담했다. 1인샵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원장님 스스로 일당백해서 꾸려가는 동네 학원. 다행히 원장님은 날 긍정적으로 봐주셨고 "당장의 점수보다 공부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돕고싶다"는 원장님의 건강한 철학도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그렇게 설 연휴 직후 덜컥 근무를 시작했다. 십수년 전 대학생 때 과외해본 경험이후로 교육 경험이 전무하던 터라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원장님과 학생들의 선한 배려로 연착륙할 수 있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짧다면 짧지만, 입시로 단조롭던 내 생활에 다양한 임팩트를 준것이 사실이다.

특히 내 학창시절을 돌아보게 했다. "나는 어떤 학생이었을까" "어른에게 나는 어떤 학생으로 기억됐을까" "친구들 사이 나는 어떤 친구였을까" 등등


학원에서 일하며 가장 아쉬웠던 것은 '입시 만능주의'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이들과 만나기 앞서, 나는 요즘 학교가 적어도 내 학창시절보다 '다양성'을 중시하고, 학생들의 주체로 생각해주는 분위기가 깔려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자잘한 교육정책이 수도없이 바뀌었지만(ex. 중1은 중간/기말고사를 보지 않는다), '대학입학'을 모토로 서열화하는 잔인한 분위기는 10대 초반 학생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학습속도가 느려 교실에선 주눅 들어있지만, 교실 밖에선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장기를 발휘하는 A군. 안타깝지만 오늘날 교육 현장에서도 A군의 장점보다 단점을 부풀려 '공부못하는 애'로 낙인을 찍는다.


만연한 입시 만능주의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무해함으로 웃음지었던 적도 많다. 그 나이대 아이들은 직설적이고 돌려말할 줄 모른다. 처음엔 이 화법이 낯설었지만 계산이 서툰 아이들의 태도에 뜻하지 않은 순간 위로를 받기도 했다.

이 곳에서 느낀 다양한 감정을 천천히 옮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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