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장면 속에 오래 머문 마음
어느 겨울,
여행 중 스위스에서 찍은 사진이다.
버스 창밖으로 눈이 소복하게 쌓인 나무들과,
멀리 아기자기한 집들이 모여있는 작은 마을이 보였다.
여행을 다닐 땐, 늘 셔터를 눌렀다.
한 장으로는 부족했다.
다시 올 수 없는 곳에 있는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연신 눈을 떼지 못했다.
몇 해 전부터
한라산 상고대를 꼭 찍고 싶었지만
아직도 이루지 못한 버킷 리스트에 남았다.
그래서 얼어붙은 눈꽃과 설산은
내게 아직 이루지 못한 로망 같은 것이다.
이 사진은,
그 소망이 조용히 머물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사진치료 수업에서
이 사진을 테이블에 올려두었을 때,
조용했던 그녀가 이 사진을 골랐다.
INTJ의 성향을 가진 그녀는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사진 앞에서는
조금 달랐다.
“이런 풍경을 보면 설레요.”
그녀는 낮지만 선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고대처럼 보여요.
나무 위로 빛이 내려오고…
저 멀리 집이 보이네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집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요?”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말했다.
“어르신들만 계실 것 같아요.
젊은 사람은 보이지 않겠네요.”
그곳에 함께 있다면 누구와 있고 싶은지 묻자,
그녀는 잠시 웃으며 대답했다.
“동료들과요. 한 3~4명 정도 함께 가서
3일쯤 조용히 지내고 싶어요.
산책도 하고,
그냥 집 안에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러고는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함께 있어도 괜찮고,
혼자여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녀의 말은 풍경에 대한 감상이면서도,
어쩌면 자기 자신에 대한 고백 같았다.
조용하고 정리된 마음.
낮은 목소리였지만
그 문장은 오래도록 남았다.
사진을 찍을 당시,
나는 사실 많은 아쉬움이 있었다.
버스 창 너머로 찍은 탓에
사진은 흐릿했고,
내가 가장 담고 싶던 장면에서
멈추지 못한 미련도 남았다.
좀 더 선명하게 얼어붙은 눈꽃이 찍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진을 볼 때마다 그런 아쉬움이 따라온다.
하지만 이 사진을 본 사람들 중
흐릿하다는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없었다.
사진이 어떻게 찍혔는지,
내가 그 안에서 무엇을 담고 싶어 했는지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진을 본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꺼냈고,
그 순간부터 이 사진은
‘내가 찍은 사진’이 아니라
‘함께 바라보는 풍경’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당신에게도 이루지 못한 채 남겨진,
그리운 풍경이 있나요?
어떤 장면을 보면
마음이 설레거나, 편안해지시나요?
함께 있어도 괜찮고,
혼자여도 괜찮다고 느껴지는 장소,
혹시 당신에게도 있나요?
이 사진은 상담자가 직접 촬영하였으며,
실제 사진치료 과정에서 사용된 투사적 정서 사진입니다.
감정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