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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무덤을 파는 이유

그 무덤에 빠지고 싶을 때가 있다.


강의준비를 하다가 정신역동적 가족치료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무의식과 방어기제를 모르고는 설명을 해도 이해가 어려울 것 같아서 이것저것 자료를 찾는 중에 옛 내담자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상담을 하다 보면 내담자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동인 줄 알면서도, 그 무덤에 빠지고 싶어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솔직히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나도 그럴 때가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과 이해되는 마음이 교차되기도 한다.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충분히.




사람들이 아닌 줄 알면서도 자신에게 해로운 선택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무의식적으로 고통이나 실패를 통해 익숙한 감정을 재현하려는 경향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비난받거나, 실패하는 상황 등에 익숙했다면, 스스로 그런 상황을 반복하려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자기 파괴적 행동(Self-destructive behavior)이라고 한다.


이 때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벌하려는 심리가 작용할 수도 있다. 참 안타깝게도 ‘내가 이걸 겪어야만 해’, ‘나는 이런 대접을 받을 만해’와 같은 생각이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면, 이러한 자기 응징의 일환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선택을 반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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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역동적 이론으로 본다면, 무의식적인 갈등과 방어기제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 프로이트(S. Freud)는 사람들이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했는데 이것을 반복 강박 (Repetition Compulsion)이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상처받거나 무력감을 느낀 경험이 있다면, 성인이 된 후에도 비슷한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서 다시 겪으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고통의 반복’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그 경험을 다르게 해결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될 수도 있지만 같은 패턴을 반복하다 보니 해결되지 않고, 계속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성격구조에서는 원초아, 자아, 초자아가 균형을 이루어야 갈등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지만, 만약 초자아가 너무 강해서 자기비판적인 성향이 심하면,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벌하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초자아(Superego)는 우리가 사회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기준, 도덕적 가치, 그리고 부모나 권위적인 인물로부터 내면화된 규범을 의미하기 때문에

“나는 이런 실수를 했으니 벌 받아야 해”

라는 식으로, 자기 처벌적인 행동을 통해 죄책감을 해소하려고 하는 자기 파괴적 행동(self-destructive behavior)을 하게 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에게 두 가지 근본적인 본능인 생명 본능과(사랑, 창조, 성장하려는 욕구) 죽음 본능(파괴, 무질서, 해체하려는 충동)이 있다고 했다. 때때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통해 해소되지 않은 불안을 다루려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차라리 끝까지 가보자”라는 충동이 들거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선택을 할 때, 이는 무의식적인 죽음 본능이 작용하는 걸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정신역동적 관점에서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무의식으로 억압하지만, 이 억압된 감정이 다른 방식으로 드러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과거의 좌절이나 상처가 충분히 표현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면, 지금 상황에서 ‘무덤을 스스로 파고 싶은 마음’으로 변형될 수도 있다. 즉, 스스로를 위험한 상황에 놓으면서, 억압된 감정을 표출하려는 무의식적인 시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들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는 것은, 이건 ‘차라리 확 무너지고 싶다’는 느낌과도 비슷한데, 그 고통이 오히려 익숙하고, 거기에 빠짐으로써 일종의 감정적 해소(카타르시스)를 얻으려는 경향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이런 감정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한다. 이건 특정한 사람만 느끼는 게 아니라, 누구나 가끔씩 겪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 그리고 그 순간 내 감정을 어떻게 돌볼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것이다. 이런 마음이 과거의 어떤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삶에서 어떻게 반복되고 있는지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게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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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감정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나는 왜 이런 패턴을 반복하려는 걸까?’

‘이 감정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고 해소할 수 있을까?’

‘나를 벌주려는 마음이 들 때, 내 안의 어떤 목소리가 작용하고 있는 걸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자기 자신에게 조금 더 이해하고, 위로하고, 다르게 선택할 기회를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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